'양심적 병역기피' 무죄선고 의미와 파장

헌법·국제규약 적극적 해석…'보안법 존폐' 논란에도 영향줄듯

법원이 종교적 이유로 병역를 거부한 20대 3명에대해 `양심의 자유'를 인정,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국가보안법 등 개인의이념적 자유를 제한하는 법체계에 대한 논쟁이 달아오를 전망이다. 법원의 이번 판단은 `국가안보와 배치되는 양심의 자유는 사법기관이 제한할 수있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져온 그 동안의 판례를 깨고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규약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념 대립으로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적 위협을 심화할 수 있다는 기존 판단에 대해서도, 현대전의 양상을 고려할 때 위협적 요소가 될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국제규약 해석 = 재판부는 판결에서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대해 "신앙의자유, 사상의 자유와 별개 조항으로 독립시킨 우리 헌법의 취지는 개인의 내심의 자유, 가치판단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리의 명확한 확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는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가 되고 인간 내심의 영역에 국가권력의불가침으로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불가결한 것이 돼왔던 정신활동의 자유를 보다 완전히 보장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양심의 자유를 `양심 형성 및 결정의 자유, 양심을 지키는 자유,양심 실현의 자유'로 보고, 양심상의 결정을 이유로 한 병역의무 거부는 양심을 지키는 자유와 양심 실현의 자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지난달 19일 제60차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결의안과 국제인권규약 B규약에 대해서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53개 이사국들은 유엔 인권위에서 캐나다와 영국 등을 포함한 34개국이 공동으로 제안한 이 결의안을 총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 행사'임을 재확인하고 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 마련을 각국에 거듭 촉구한 바 있다. 결의안을 공동으로 제안한 국가들에는 뼈아픈 내전의 상처를 입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세르비아-몬테네그로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재판부는 또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한 경우만 처벌할수 있도록 한 병역법에서 `정당한 사유'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보다 더 폭넓은개념으로, 병역 거부가 오직 양심상 결정에 따른 것이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밝혔다. ◆`이념적 자유' 논쟁 불거질듯 = 최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2월현재 521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전국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최초의 처벌 기록이 보고된 이래 지금까지 병역 거부로처벌받은 사람은 1만여 명에 달한다. 최근 추세를 보더라도 2000년 683명, 2001년 804명, 2002년 734명, 2003년 7 05명 등 매년 700명 내외의 병역거부자들이 총을 드는 대신 감옥행을 선택하고 있다. 국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대부분이지만 2001년 12월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29)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한 뒤 불교 신자를 비롯해 개인적.정치적 동기에 의해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이 12명에 이를 정도로 점점 병역 거부 문제는 이념적, 사상적 자유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재판부는 특히 첨단 과학 무기와 장비가 주도하는 현대전 양상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납세의 의무나 교육의 의무를 거부하거나 국가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안보를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혀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란에도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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