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젊은 사업가들 조국 등진다

사법기관-범죄단체 결탁 기업 강탈등 못견뎌


4년 전 모스크바에 사무실을 열 때 바닥에 유로화 카펫을 깔았던 에브게니 치크바르킨(34). "루블화가 유로화를 이길 것"이라는 애국심에서 이 같은 이벤트를 벌였던 애국심 넘치던 젊은 사업가는 지금 도망자 신세다. 귀국 전 영국에서 수십억 달러짜리 벤처기업을 일구며 촉망 받던 그는 러시아 사법당국으로부터 납치와 고문 협의를 받고 있다.

치크바르킨 뿐만 아니다. 수많은 기업가와 변호사, 회계사, 은행가 등 국가발전에 핵심역할을 해야 하는 인재들이 부패한 사법당국 관리들의 위협과 강탈 등에 못 견뎌 조국을 버리고 있다.

14일 뉴스위크에 따르면 런던에만 수 천명의 러시아 사업가들이 체포를 두려워해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01 망명한 미디어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다.

뿐만 아니다. 소재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자 1,300명 중 13%가 러시아를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이는 사회 혼란이 극심했던 소련의 붕괴 직후인 1992년과 같은 수준이다.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전체 러시아 사업가 중 3분의 1가량이 경찰의 기업 강탈시도의 목표가 돼 온 것으로 추정했다. 또 모스크바 시청이 설치한 반(反) 기업 강탈과 관련된 핫라인에는 예년보다 10배가 많은 2,000건이나 되는 신고가 접수됐다.

러시아의 경찰과 비밀경찰, 정부관료들은 강탈 목표물을 찾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와 다르게 러시아에서는 기업의 인수·합병이 대부분 단순한 범죄혐의를 적용한 영장을 들고 급습하는 무장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자행되며 문서와 컴퓨터 압수, 사업체 강탈, 법적인 소유주에 대한 협박 등이 동반된다.

이 같은 유형은 2003년 크렘린이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유코스를 해체하고 소유주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체포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익명을 요구한 유코스 담당변호사는 "러시아 관료들은 푸틴이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같은 행태가 만연해했음을 전했다.

이 같은 문제의 중심에는 러시아 사법기관과 범죄세계의 사악한 결탁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변호사인 블라디미르 파스투코프는 "이런 결탁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절대 무너지지 않는 강철과 같은 것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고급두뇌 유출에 따른 경제적인 충격은 크다. 석유산업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에서 발전 징후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가 권력을 잡은 이래 10여 년간 러시아는 산업 발전을 위해 석유로 벌어들인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지만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경쟁력지수(GCI)가 52위에서 63위로 오히려 떨어졌다. 재산권 부분에서는 119위를 기록해 아프리카 말라위나 중남미 니카라과 수준에 머물렀으며 사법권 독립은 116위, 경찰 신뢰성은 112위에 그쳤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리즈코프는 "러시아의 현대화를 이끌 동력이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지만 바로 이들을 국가가 박해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들이 체포가 두려워 조국을 떠나는 현실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어떻게 유인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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