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홍콩 블루스


"대만인이 자신들의 손으로 자유롭게 최고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홍콩의 현재 정치 시스템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선거 드라마가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총통 선거 취재차 찾아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한 홍콩 언론인이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당시 대만 행정원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당일 투표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개표 방송 시간에 맞춰 외신 기자를 초청, 정치 분석가들의 향후 정세를 들려주고 질의ㆍ응답 시간을 갖고 있었다.

홍콩에서도 오는 25일 제 4대 행정장관 선거가 치러진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최대 축제라 불리는 선거 시즌이 다가왔지만 정작 홍콩 시민들은 실의와 불만에 차 있다. 앙등하는 부동산 값, 물가 급등 등에 따른 생활고에다 도널드 창 현 행정장관은 물론 그의 후계자격인 헨리 탕 후보의 부패 연루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정치 체제상 시민들에게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다.

홍콩은 업계, 교계 등 직능ㆍ분야별로 구성된 1,200여명의 선거인단이 행정장관을 뽑는 간접선거다. 그나마 이들 선거인단도 대부분이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기업계, 정계 인사들로 채워져 있어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중국 정부가 낙점하는 인사가 행정장관이 되는 게 관례가 돼왔다.

지난 1980년대 초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후 홍콩은 중국에 제일 먼저 투자를 단행하고 선진 금융ㆍ경제 노하우를 전수함으로써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형세가 역전되면서 홍콩인들은 이제 2등 시민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정체성 위기에 처해 있는 듯하다. 중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중국발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정체성 위기는 시민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기형적 정치 체계와 맞물리면서 홍콩을 더욱 더 불안과 고뇌의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선거인단 몇몇이 최고 지도자를 뽑는 '체육관 선거'가 지속되다 보니 홍콩에는 정책 대결을 벌이고 정권을 쟁취하는 정치집단과 관계된 정당법이 없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출마한 소수파인 민주당의 앨버트 호 주석마저 스스로 당선 가능성이 없다며 공개 선언할 정도다.

이러자 시민들은 당장 직접선거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도 내심 곤혹스럽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 받으며 내건 1국가 2체제가 삐걱거릴 경우 중국 정부의 가장 민감한 정치 사안인 대만 통일 문제도 순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2007년 도널드 창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중국은 매번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홍콩의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하는 중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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