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커지는데 돈 안도는 '화석 증시'

3년간 시가총액 늘었지만
거래대금 갈수록 줄어들어
상장사 자금조달 차질 우려


주식시장 규모는 점차 커지는데 돈은 안 도는 현상이 최악에 달했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위주의 포트폴리오 구성을 선호하고 저금리 기조 속에 채권 투자로 쏠리면서 주식시장을 외면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금의 주식시장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어 증권사들의 수익 악화는 물론 상장 기업의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주식시장의 덩치는 갈수록 공룡이 되는데 피가 돌지 않으면 그대로 화석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5일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 비중은 0.28%로 올 들어 이달 12일에 이어 벌써 두 번째 0.2%대를 기록했다. 이날 시가총액은 1,147조7,090억원이었으나 시장에서 거래된 금액은 고작 3조2,191억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 비중은 주식시장의 규모에 비해 거래의 규모가 어떠한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낮을수록 돈이 돌지 않는 경직된 시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 비중이 0.2%대로 급격히 떨어지는 일은 연말 장 마감이나 연휴 등 특별 이벤트를 앞둔 날 외에는 거의 없었다.

실제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0.4~0.6%를 오가 0.2%대로 떨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1년 전체를 통틀어도 고작 여섯 번에 불과했다. 올해는 벌써 두 번이나 0.2%대를 기록했으니 이미 지난해 전체 기록의 3분의1을 채운 셈이다.

문제는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 비중 감소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장기간 동안 심화돼 현재 최악의 상태임에도 저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2009년 8~9월 거래대금은 최고 1.06%(8월24일)를 기록하는 등 수차례 시가총액을 넘어섰지만 이후 3년여간 시가총액은 늘어나고 거래대금은 줄어드는 현상이 이어져오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도 불투명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임종필 현대증권 연구원은 "위험성이 높은 주식 투자보다 상품이나 채권 투자를 확대하는 투자 패턴이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제한적인 이유"라며 "최근 기준금리가 동결되는 등 저금리 기조가 지속된다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으면서 안정성도 높은 채권시장으로 계속 돈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거래 수수료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익성에도 악재다. 심지어 인력 구조조정 등 한파가 몰아치는 증권가에 장기간의 '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우다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업종은 구조적으로 다운 사이클에 직면한 상황으로 추세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추세 반등을 위해서는 정부 입장이 금융산업 육성으로 돌아서거나 실질적인 경기 부양 효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