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토피아] 와레즈 단속 강화에 ‘비실비실’

불법파일 공유 온상…한때 열풍


지금은 P2P에 가려져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와레즈’는 한 때 인터넷 정보를 공유하는 최전선 역할을 담당했다. 와레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980년대부터. 당시 값이 비싼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기 어려웠던 일부 해커들이 정보공유를 주장하며 사용자 고유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크랙(crack) 버전’의 상용 소프트웨어를 올린 사설 게시판(BBS)을 개설한 후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와레즈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상용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상당한 자극을 받았고, 이런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정보격차 해소를 한다는 나름대로의 대의명분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활성화와 함께 와레즈 사이트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한글이나 오피스, 백신 프로그램과 같은 상용 프로그램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와레즈의 명칭에 대해서는 온갖 얘기가 나돌지만 ‘어디에 있느냐?(Where it is?)’가 줄어 와레즈(Wares)가 되었다는 설(說)과 프로그램을 뜻하는 웨어(Ware)의 복수형이 굳어졌다는 설(說)로 양분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의명분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빛을 잃기 시작했다. 정보공유라는 말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한 명분으로 포장됐고, 소프트웨어 업계는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도 와레즈로 치명타를 입었다. ‘한글과소프트’ 같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도 한때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또 와레즈 사이트에 올라온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이 패키지 게임이 되면서 국내 패키지 게임 산업의 몰락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무엇보다 와레즈 사이트는 불법 음란물의 온상이었다. 한 때 ‘못 보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았던 인기스타 동영상을 비롯해 야동(야한 동영상)ㆍ야사(야한 사진)ㆍ야설(야한 소설)이 와레즈 사이트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관계당국의 단속으로 이어졌다. 지적재산권 침해와 음란물 유포라는 두 가지 혐의 속에 와레즈 사이트는 지난 2000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불법판정을 받았고, 그 후 와레즈 사이트는 ‘개설’, ‘단속’, ‘폐쇄’라는 숨바꼭질을 계속해왔다. 와레즈 사이트의 운영자들은 대부분 이를 부업이나 취미생활로 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초반으로 컴퓨터에 능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중에서는 중ㆍ고등학생도 상당수에 달해 “중학생이 음란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와레즈 사이트는 돈에 대한 욕심보다는 과시욕 차원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운영자들이 스스로를 ‘정보공유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었다. 와레즈 사이트가 쇠퇴기를 맞이한 것은 정부의 단속보다도 경쟁자인 P2P 프로그램의 확산이 더욱 주요했다. 와레즈는 특정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만 내려 받을 수 있는 형태인데 비해 P2P는 각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찾아서 받을 수 있어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편의성을 기준으로 와레즈는 P2P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었던 셈이다. 여기에 사이트의 폐쇄와 재개설이 반복되는 불안정한 운영도 공짜 자료를 찾아 돌아다니는 네티즌의 발길을 돌리도록 했다. 결국 자료 공유의 왕좌를 P2P에 넘겨준 와레즈는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과거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정보공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단속을 피해 와레즈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일부 성인 사이트가 와레즈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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