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결혼'한 국내 대중가수들의 대부

'비내리는 호남선' 작곡가 박춘석씨 별세
이미자와 500여곡 작업… 개인 최다 작곡 기록도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적인' 작곡가 박춘석씨가 14일 오전6시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국내 대중가수들의 '대부'로 불리며 음악적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고인은 4세 때부터 풍금을 치기 시작하면서 신동으로 불렸다. 지난 1930년 5월8일 서울에서 태어난 박씨는 조선고무공업주식회사를 운영하던 부친의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본명은 의병(義秉). 춘석은 아명이다. 봉래소학교ㆍ경기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스스로 깨우칠 만큼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1949년 피아노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 1년간 다니다 중퇴한 그는 이듬해 신흥대학(현 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길옥윤, 베니 김 등의 제의로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고인의 히트곡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로도 많다. '아리랑 목동(박단마)' '비 내리는 호남선(손인호)' '삼팔선의 봄(최갑석)' '사랑의 맹세(패티 김)' '바닷가에서(안다성)'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박재란)' '호반에서 만난 사람(최양숙)' 등을 발표하며 인기 작곡가로 떠올랐다. 가수 이미자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세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온다. 1964년 이미자와의 콤비시대가 개막되면서 작풍이 트로트로 급선회한 것. 이미자와는 그동안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를 비롯해, 30주년 기념음반 타이틀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까지 무려 500여곡을 통해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작곡가 박춘석의 이름 뒤에는 항상 '사단(師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60~1970년대 패티 김, 이미자, 남진,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하춘화가 박춘석 사단의 멤버였다. 고인은 이들과 함께 '가슴 아프게' '공항의 이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비 내리는 호남선' '초우' '물레방아 도는데' '사랑이 메아리칠 때' '가시나무새' '마포종점' 등 한국인의 가슴을 적신 숱한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노래는 대중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아시스레코드사와 지구레코드사의 전속 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거성레코드사 사장 등을 거치며 1950~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온 그는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700여곡을 작곡했고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 최다인 1,152곡이 등록돼 있다.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그도 19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모습을 감췄다. 16년간 투병하면서 거동은 물론 언어장애로 의사표현도 하지 못했다. 고인은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래서 간병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동생 박금석(77)씨가 맡았다. KBS 방송가요대상, KBS 가요ㆍ가사ㆍ음반기획상, MBC 10대가요제 특별상, KBS 가요대상 작곡상,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1994), 옥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됐고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8일 오전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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