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부총리·한은총재의 우울한 경제인식

얼마 전 우리 경제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진단한 이헌재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요즘은 정말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성장ㆍ투자환경 변화와 금융시장 변화를 볼 때 우리경제가 1990년대 일본의 장기침체 때와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우리경제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발언이다. 이 부총리와 박 총재가 위기론 속에서도 경기 조기회복과 향후 경제전망에 대해 낙관론을 꺾지 않고 경제 주체들에 희망을 불어넣으려 안간힘을 다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 그들이 걱정, 그것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우려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경제정책과 통화정책의 수장인 두 사람의 낙관적 경제전망은 그 동안 번번이 빗나갔지만 우리는 이를 탓하고 싶지않다.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위기’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발언 내용엔 위기의식이 짙게 배어있다. 특히 단순히 경기회복의 시기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우리경제의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 부총리가 시장경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뒷다리를 잡는데 시장경제가 되겠느냐”고 한 말은 결코 예사롭게 들어 넘길 일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시장경제와는 반대로 움직이거나 최소한 시장경제의 작동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정책수행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부총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말해 시장경제를 확립해 나라경제를 바로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뒷다리를 잡는 강도나 이로 인한 문제점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 시장경제원칙의 작동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경제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으로 지금의 경제난 조기극복은 커녕 우리경제의 미래 역시 암울할 수밖에 없다. 경제체제와 작동 시스템이 의문시 되는 상황에서 정책 일관성과 확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이렇듯 정책이 어디로 갈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투자가 이뤄질 리 만무하며 기업들의 의욕이 되살아 날 턱이 없다. 이 부총리와 박 총재는 바뀐 경제인식에 맞추어 바른 처방을 내리기 바란다.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정치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론에 음모론이나 들먹이고 시장경제의 뒷다리나 잡아서는 진짜 위기가 닥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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