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여명을 싣고 달리던 세 편의 열차가 추돌과 충돌을 하는 아찔한 사고가 31일 대구 북구 대구역에서 일어났다. 저속 운행 중이어서 다행이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자칫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뻔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 나오겠지만 관제사와 기관사, 여객전무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인재'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31일 오전 7시15분께. 서울행 무궁화 1204호(승객 275명)가 대구역을 출발해 본선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앞서가던 KTX 4012호(승객 464명)의 옆을 들이받았다.
원래는 KTX가 지나간 후 무궁화 열차가 출발해야 하지만 평소와 달리 KTX가 역을 빠져나가기 전에 무궁화호가 출발해버린 것이다. 이후 반대쪽에서 부산 방향으로 달리던 KTX 101호(627명)마저 사고 사실을 모른 채 대구역으로 진입하면서 KTX4012호와 충돌했다.
사고 현장은 동체 옆면이 찢겨나간 KTX와 흩어진 유리조각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처음 추돌사고가 난 열차 가운데 9량으로 편성된 무궁화 열차의 기관차 1량과 20량짜리 KTX의 2~9호 객차 8량 등 모두 9량이 탈선했다.
9량의 객차에는 총 100여m에 걸쳐 열차 차량 왼쪽 외부가 긁히거나 깊숙이 패여 내장물이 훤히 드러났다. 레일 일부는 쓰러진 열차 무게를 견디지 못해 휘어졌다.
KTX 4012호의 13호 객차에 타고 있던 정모(24)씨는 "동대구역에서 승차해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갑자기 굉음과 함께 심하게 흔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객차에 있던 승객들이 사고가 난 것을 알고 열차 밖으로 나오니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한 객차(KTX 2~9호차)의 승객들이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KTX 101호의 한 승객은 "수백명의 승객이 열차에서 나와 좁은 철로를 따라 대구역으로 가고 있는데도 코레일측에서는 이렇다 할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밝혀낼 열쇠는 무궁화호 열차가 왜 KTX열차가 통과하기도 전에 출발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코레일 측은 사고 직후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는 같은 방향의 KTX 열차가 대구역을 완전히 통과한 뒤 출발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코레일에 따르면 사고 당시 무궁화호 열차에 '정지' 신호가 표시돼 있었고 KTX 열차에 '진행' 신호가 표시돼 있었다.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사고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열차 출발신호는 관제사-여객전무-기관사의 '3각 체제'를 거쳐 결정된다. 역 관제실이 신호기에 출발신호를 넣으면 여객전무가 눈으로 보고서 무전으로 기관사에게 "신호기를 확인한 뒤 출발하라"고 전달하면 기관사가 출발하는 방식이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사고 무궁화호 열차의 여객전무 업무를 맡은 2명 가운데 1명은 최근 7년 간 여객전무 일을 하지 않았다며 자격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코레일측은 자격증을 갖고 10년 간 여객전무 일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해명했다.
기관사가 신호를 오인해 출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구역에서는 앞서 2008년 2월에도 하행선 무궁화 열차와 화물 열차가 선로 합류지점에서 충돌해 20여분간 열차운행이 지연된 적이 있다. 당시 코레일 측은 "부 본선로에서 대기하던 화물열차가 다른 선로의 출발신호를 오인해 사고를 냈다"고 밝혔다.
코레일과 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공안)는 출발신호를 담당하는 3각 체제에 소통 문제가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문길주 사무국장은 "사고 직후 사고 관계자와 현장을 중심으로 원인 조사에 들어갔지만 다른 조사 사안이 많아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