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승용차 불법리스에 대한 재경원의 감사가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중단됐다는 소식이다. 한마디로 이처럼 무원칙하고 나약한 자세로 어떻게 무역적자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간다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외제차는 지난해 수입증가율이 60%에 이르렀던 대표적인 과소비 품목중의 하나다. 대당 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억대가 넘는다. 외제차 구매자 가운데는 차값을 현찰 일시불로 내는 사람도 흔하다고 들린다. 미국에서는 1만달러이상의 현금거래는 자금출처조사가 의무적이다. 우리나라 외제차 구매자들은 미국에서라면 모두 자금출처조사 대상이다.
재경원의 감사는 자금출처조사도 아닌 외제차의 불법 리스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법인명의로 수입한 외제차를 개인용도로 사용해 탈세를 하는 사례를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수입 외제차는 60%이상이 리스형태로 수입되고 그중 상당수가 그처럼 불법으로 이용되고 있다면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정부가 의당 해야할 통상적인 행정업무인 것이다.
지난해 국세청이 이 부분에 대한 조사를 하려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좌절됐었는데, 이번에 재경원이 5개 리스회사에 대한 정기감사를 실시하며 외제차 리스실적을 제출토록 요청했으나 방한중인 숀 머피 미국무역대표부(USTR) 아시아태평양 지역담당관의 이의제기로 다시 철회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한국에 대해 무차별적인 통상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환경문제를 고려해 경유를 쓰는 지프의 자동차세를 올리려 하자 수입규제라며 이의 철회를 요구하는가 하면, 한국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통신기기업체의 자재구입을 못하도록 한국정부가 보장하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그밖에 미국이 한국에 대해 트집을 잡고 있는 분야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어려운 현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1백16억달러의 적자를 봤다. 이같은 추세는 올들어서도 지속돼 2월말까지 20억달러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사활이 걸린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관민이 합심해 갖가지 과소비억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과소비풍조에 대해 선진국들은 엊그제까지만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등 비아냥대기 일쑤였다. 뒤늦긴 했지만 국민적 각성에서 출발한 것이 과소비억제 운동이고, 그점에서 수입규제가 아니라 건전소비조장 운동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까지 미국정부는 트집을 걸고 있다. 한국민의 감정을 무시하는 내정간섭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재경원이 외제차의 불법리스에 대한 감사를 포기한 것은 원칙의 포기이자, 한창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가고 있는 과소비자제 운동을 맥빠지게 하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 양보하고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협상방편이라고 변명을 할지도 모르나 성공적인 협상의 열쇠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탈세조사라는 당연한 의무행사를 외압에 의해 포기하는 정부라면 어느나라인들 얕잡아보지 않을 것인가. 미국의 통상압력은 원칙없는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정부는 보다 의연하고 당당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