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오는 11일 수정안을 발표한 뒤 친박계와 충청권의 이해를 구하면 4월 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킨다는 여권 주류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0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 참석,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안이 배제된 수정안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수정안으로) 당론을 만든다고 한다면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당론을 뒤집는 것"이라며"그런 당론을 만든다면 나는 반대"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6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세종시 행정부처 이전이 당론으로 채택된 후 세종시는 행정부처 이전에 자족기능 강화를 위한 지원까지를 원안으로 정의했다. 결국 행정부처 이전을 철회하고 파격 지원과 대기업 이전을 담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박 전 대표의 원칙론을 돌리지 못한 셈이다. 당내 50여석을 차지한 친박계 의원들도 박 전 대표와 뜻을 같이할 것으로 보여 수정안의 국회 통과는 일단 난관에 부딪쳤다.
여권 주류는 난처한 표정이다. 당초 11일 수정안을 발표한 뒤 친박계의 동의를 구하면 4월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이전이 가시화하면서 조심스럽게 무난한 처리를 점친 당내 주류 인사들은 들썩이고 있다.
당 지도부의 한 친이계 인사는 "친박계의 협조를 구한다면 4월 처리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박 전 대표가 반대하고 나선 이상 국회 처리는 지방선거가 있는 6월 이후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내에서 반대가 있는 세종시는 예산안처럼 강행할 명분도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은 "지난달 말 몇몇 친이계 의원들이 정정길 대통령 실장을 만났을때 세종시에 대해 '충청권의 민심과 박 전 대표의 이해를 구하면 국회 처리가 무난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는데 일이 어렵게 됐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들이 우려하는 점은 6월2일 정치권의 빅 이벤트인 지방선거를 앞에 두고 세종시 문제가 정쟁으로 발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정부의 수정안이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세종시 수정 여부를 둘러싼 집권당 내 주류ㆍ비주류 간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여권 주류와 '여당 내 야당'인 친박(친박근혜)계는 이번 싸움의 승패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세종시 수정에 총대를 멘 정운찬 총리나 수정불가 입장을 고수한 박 전 대표 둘 중 한 명이 상당한 '내상'을 입기 쉽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친이명박) 주류 측 역시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다.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 측은 힘을 받겠지만 친박은 타격을 입는다. 이 경우 정 총리는 명실상부한 여권의 차기 주자로 부상할 수 있고 차기 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박 전 대표는 입지가 다소 흔들린다.
하지만 수정안 통과가 불발될 경우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 측이 내상을 입게 되는 것은 물론 책임론에 휩싸이면서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박 전 대표는 부동의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