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 대구지법서 배심원 후보 37% 참석…모의재판 3배 넘어 증인들 증언 메모등 열정적 참여의지 보여
입력 2008.02.12 17:03:52수정
2008.02.12 17:03:52
안타까운 사연, 배심원 심금 울렸다
■ 대구지법서 국내 첫 '국민참여재판'만장일치 집유권고… 재판부 전격수용 석방일부선 "감정에 너무 휘둘릴라" 우려도
대구=윤홍우 기자 seoulbird@sed.co.kr
사채 빚에 시달리다 범죄까지 저지른 한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배심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12일 국내에서 첫 실시된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의견을 전격 수용, 징역 7년형 이상을 받을 수도 있는 강도상해 범죄에 집행유예형을 선고하고 피고인을 석방했다.
이날 재판은 오후2시 대구지법 형사 11부(윤종구 부장판사) 법정에서 일반시민 중에 선발된 12명의 배심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됐다.
재판에 회부된 사건은 다소 '특이한' 강도상해 범죄. 사채 빚에 시달리던 피고인 이모(26)씨는 지난해 12월 혼자 사는 노파 정모(70)씨의 집에 셋방을 구하러 온 것처럼 들어가 칼로 정씨를 위협하며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씨가 강하게 저항했고 당황한 이씨는 정씨를 쓰러뜨린 채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 코뼈를 부러뜨리는 등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 이씨는 그러나 곧 범죄를 뉘우쳤고 정씨를 병원에 데려간 후 목격자에게 자신을 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징역 5년형을 구형한 검찰 측은 범죄사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선혈이 낭자한 피해자의 얼굴 사진 등을 제시하며 배심원들에게 '법대로' 판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구지검 공판부 최창민 검사는 "이씨가 비록 금품을 빼앗지는 못했으나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고 폭행까지 했다는 점에서 강도상해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수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자수는 수사기관에 직접 제 발로 찾아가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세상에 이런 강도가 어디 있느냐"며 딱한 처지의 이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사채업자들이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마저 위협하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이씨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는 것. 특히 피해자를 직접 업어 병원에 데려가고 제3자를 통해 자수를 시도하는 것도 분명 자수로 볼 수 있으니 이를 참작해달라는 것이 변호인 측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배심원들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 만장일치로 집행유예를 권고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이번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 후보자 230명 중 87명(37%)이 참석해 비교적 참석률이 높았다. 재판 운영 절차도 깔끔했다는 평이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앞으로 더 증가할 국민참여재판이 배심원들의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국민참여재판이란
12일 대구지법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 사법부를 견제하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올해부터 도입됐다.
독일식 참심제와 미국식 배심제를 혼합한 것이 특징. 배심원이 유·무죄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평결도 하지만 미국식 배심제처럼 판사에게 배심원의 의견이 강제력을 갖지는 않는다.
만 20세 이상 국민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배심원으로 선정될 수 있다. 대상 사건은 살인·존속살해·강도강간 등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고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범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