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마저 대기업들의 미진한 구조조정에 채찍을 들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가 17일 대기업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수시조사 방침을 밝히고 나선것은 구조조정을 기업 스스로에게 맡겨 두었다가는 시간만 소모할 뿐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힘들다는 정부차원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5대그룹의 경우 올들어 전체 회사채발행 금액의 76.9%를 차지하는 등 자금시장을 독식하고 있으며 계열사 숫자도 지난해보다 오히려 3개나 더 늘어난 상태』라며 『이는 5대 그룹의 구조조정 노력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田위원장은 특히 『5대 그룹이 시중자금을 독식한 후 이를 재무구조가 불량한 다른 계열사에 지원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부당내부거래로 이에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 조사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오는 연말까지를 기업구조조정의 1차 마감시한으로 잡고 있는 정부로서는 이업종간 상호지급보증의 완전한 해소조치와 함께 대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를 통한 한계기업 연명시도를 원천 봉쇄해 기업구조조정 효과의 조기 가시화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5대 그룹 현황 = 재벌개혁 조치가 올들어 강도높게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5대그룹의 외형은 더욱 번창하고 있다는게 공정위의 분석이다.
우선 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전체 회사채 발행금액 가운데 5대 그룹이 76.9%를 독식한데 이어 올한해 유상증자 금액중 86% 이상을 이들 5대 그룹이 차지하고 있다.
IMF 이후 중소기업들이 필요자금을 구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기업들은 넘쳐나는 자금을 주체하지 못해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자금흐름의 이중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들이 만약에 대비해서 자금을 확보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과정에서 우량기업이 부실계열사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의 내부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특히 계열사들이 외부차입에 의해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부실게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자칫 그룹 전체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만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게 공정위측의 설명이다.
◇공정위의 5대그룹 구조조정 촉진책 = 공정위의 기업구조조정 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차단, 그룹전체가 동반부실화하는 것을 막는 한편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억제해 부실계열사에 대한 금융지원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5대 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조사를 수시조사 체제로 변경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5대 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반기감사보고서 및 각종 재무정보를 수집,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언제든지 조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두차례 이루어진 5대 그룹 부당내부거래조사에 이어 조만간 추가조사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특히 「부당한 지원행위 심사지침」을 수정, 부당내부거래의 구체적 사례들을 적시함으로써 판단과정에서 야기되는 불협화음을 제거해 나가기로 했다.
田위원장은 『두차례의 조사로 5대 그룹의 부당내부거래 혐의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다』며 『현재 진행중인 6대 이하 그룹 조사에 이어 가능하다면 연내에 5대그룹에 대한 추가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아울러 대기업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해소를 위해 5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채무보증 규모가 많은 3개사를 선정, 다음달중 탈법여부를 가리는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지난 4월 이후 전면금지하고 있는 신규채무보증이 발생했는지 여부와 이면보증및 백지어음등을 활용한 불법보증 사례가 있는지등을 정밀 조사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또 금융감독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보증실익이 없는 경우는 금융기관이 원칙적으로 이를 해지토록 하는 한편 채무보증금액을 시장가치로 평가해 주식이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등으로 교환하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