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이른바 '러시아 쇼크'로 발생할 독일 경제의 추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글로벌 투자가들도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지정학적 악재가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경제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최근 유로화 자산을 대거 팔아치우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분데스방크는 이날 월례 보고서에서 "계속 터져 나오는 탐탁지 않은 '국제 뉴스'로 올 하반기 독일 경제전망이 어두워졌다"며 "지난봄에 예상했던 올 경제전망을 실제 달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진단했다.
분데스방크가 독일 경제의 걸림돌로 언급한 국제 뉴스는 바로 우크라이나 사태다. 지난해 11월부터 본격화된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유럽(EU) 등 서방권이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러시아가 보복에 나서면서 펀더멘털이 탄탄한 독일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러시아는 독일의 10대 무역국 가운데 하나로 독일 내 일자리 30만개가 대러 수출에 의존하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이른바 '러시아 쇼크'로 수출이 급감하고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2·4분기 독일 국내총생산(GDP·잠정치)은 전분기 대비 0.2% 감소했다. 독일이 자국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해 마지막까지 대러 제재에 미온적이었던 것도 이러한 경제적 여파 때문이었다.
분데스방크는 지난 6월 내놓았던 독일의 올해 성장 전망치(1.9%)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현재로서는 우리 기대치에 못 미칠 확률이 높다"며 "전반적 경기 하강세가 올 하반기에 더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가 '일시적'이라고 낙관했던 분데스방크가 이처럼 자국 경제전망을 암울하게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분데스크방크의 경고는 곧 '유로존 경제' 전체를 향한 것과 같다. 2·4분기 유로존 전체 경제성장도 제자리걸음(0%)을 했다. 지난해부터 디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유로존 경제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유로 자산 엑소더스를 부추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월가의 저명한 투자자인 리처드 번스타인이 운영하는 리처드번스타인어드바이저스의 한 뮤추얼펀드는 3월 말 당시 23%에 달하던 유로 주식 비중을 3개월 만에 18.7%까지 줄였다.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내 유로주식형 펀드에서 지난달 1억2,100만달러가 빠져나가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순유출을 기록했다.
러시아 경제와 더욱 밀접한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7월 이후 폴란드 즐로티화와 헝가리 포린트화, 체코 코루나화는 각각 3%, 4%, 4%씩 통화가치가 하락했다. 동유럽 주식 및 채권 펀드에서는 이달 들어 11일 현재까지 6억6,0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러시아는 제재에 대응해 서방권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자동차 수입금지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정부는 미국·EU의 대러 추가 제재시 이들 국가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미 이 같은 내용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러시아 경제일간지 베도모스티를 인용해 보도했다. 자동차 분야는 미·EU 경제의 중추산업 가운데 하나로 이 보복 카드가 현실화될 경우 서방권의 피해는 앞서 러시아가 단행한 농산물 및 식품 수입금지 조치 때보다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러시아의 보복조치로 농산물 생산과잉 및 가격하락의 피해를 당한 농가의 소득보전을 위해 EU집행위원회는 1억2,000만유로(약 1,700억원)를 긴급자금으로 투입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이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