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모바일 코리아] 팬택의 위기=국내 휴대폰산업 위기

매각땐 中에 기술유출 우려
투자 유치해 반드시 살려야


팬택의 역사는 한국 휴대폰의 역사다. 2000년 세계 최초 CDMA2000 휴대폰 출시 등 많은 최초 기록을 세웠다. 또 마라톤 선수의 신기록 경신을 돕는 페이스 메이커처럼 팬택이 있어 국내 제조업체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때문에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팬택의 위기는 국내 휴대폰 산업의 위기"라고 말한다.

지난달 25일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짧은 소감을 남기고 팬택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분기 연속흑자를 앞세워 성공적으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마무리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적자를 기록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박 부회장은 "팬택 본연의 경쟁력을 확신한다"고 말했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장상황에서 팬택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국내 휴대폰 업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만 해도 국내 휴대폰 시장에는 텔슨전자ㆍ어필텔레콤ㆍVK모바일 등 수십개 업체가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바뀌면서 팬택만 살아남았다. SK텔레시스와 KT테크 등 대기업들도 줄줄이 휴대폰 사업에서 손을 뗐다. 모토로라ㆍHTCㆍ블랙베리 등 글로벌 업체들도 실적부진으로 철수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팬택이 흔들리면서 "이번 위기가 팬택만의 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국 휴대폰 제조사가 전격적으로 팬택을 인수하거나 연구개발 인력을 흡수할 경우 국내 휴대폰 산업의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팬택은 2010년 국산 첫 안드로이드폰인 '시리우스'를 내놨고 지난 8월에는 세계 최초 지문인식 LTE 스마트폰인 '베가 LTE-A'를 선보이는 등 기술력에서는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팬택의 가장 큰 문제는 누적적자에 따른 연구개발(R&D) 비용 감소다. 연구개발 투자액이 연간 2,600억원 내외로 적지 않은 규모지만 각각 15조원, 3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올해 초 퀄컴과 삼성전자에서 각각 245억원과 530억원을 유치해 올해 연구개발비는 확보했지만 연내에 흑자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제품 자체의 기술력만 봤을 때는 팬택은 얼마든지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과 경쟁이 가능하지만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에서 역부족인 상황"이라며 "브랜드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막강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외 업체들의 투자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팬택을 향한 중국업체의 러브콜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 전통 통신기업인 화웨이가 해외 휴대폰 제조사 인수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공공연히 밝혔다. ZTEㆍ레노버 등도 팬택의 행보를 예의주시한다. 현재 팬택의 경영권이 채권단에 있어 실제 인수로 이어지기에는 난관이 많지만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파격적인 조건으로 핵심 인력을 영입할 경우 얼마든지 기술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박갑주 건국대 교수는 "팬택이 계속 적자를 이어가면 채권단이 그간 최후의 카드로 남겨뒀던 매각에 나설 수도 있다"며 "기술유출을 막고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팬택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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