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물가를 자신들의 목표치(2%)에 맞추기 위해선 연간 1조유로(약 1,445조원) 규모의 자산매입(QE·양적완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유럽에 팽배해 있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QE 등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데는 천문학적 자금이 동원돼야 한다는 의미여서 이를 놓고 찬반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ECB 내부 보고서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입수·보도됐고 ECB 관계자들이 이를 확인시켜줬다고 지난 4일(현지시간) 전했다. 보고서는 ECB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식 QE를 도입해 매달 800억유로 혹은 연간 1조유로어치의 유로화 표시자산을 사들일 경우 오는 2016년도 물가상승률이 0.2~0.8%포인트 높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로존의 2016년 물가에 대한 전문가 예상치는 1.8%다. 즉 보고서 내용대로 ECB가 QE 정책을 실시하면 2016년 유로존 물가가 2.0~2.6%까지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ECB의 목표치(2%)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만큼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CB 보고서에서 제시된 액수(월간 800억유로)는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쏟아부었던 QE의 월간 최대치(850억달러)보다도 많은 규모다. 이 정도의 유동성을 투입하는 데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 효과(0.2~0.8%포인트)가 상대적으로 미미해 "QE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대될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앞서 3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및 이후 기자회견에서 QE 등 보다 적극적인 통화완화 정책 실시 여부에 대해 "(현재의) 저물가 수준이 오래 지속되면 위임된 권한 내에서 모든 수단을 쓸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설 것"이라면서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전망을 바꾸기에 앞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연준식 QE 도입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증시 등) 자본시장 위주의 미국과 달리 은행여신 의존도가 높아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반면 FT는 이날 사설에서 "오랜 기간 계속돼온 저인플레이션 상황이 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될 경우 EU 국가들이 지고 있는 엄청난 부채를 감당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며 "드라기는 말보다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공격적 경기부양책 실시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