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 4월20일 서울에 도착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환경속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으며 큰 대학을 나온 것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다 친근한 형제처럼 따뜻하고 친절하였으며 우리를 하나하나 손잡아 이끌어주는 훌륭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시기에 직업상 관계로 비교적 외국에 많이 다녔으며 남한의 발전상에 대하여서도 나름대로 일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한국의 현실은 상상을 훨씬 초월하였습니다.
우리는 만방에 빛을 뿌리고 있는 한국의 발전된 현실을 보면서 짧은 기간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역사의 기적을 창조하여 놓은 남역동포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민족이 이룩한 이러한 세기적 변혁을 우리 두사람만이 보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으며 하루빨리 북한동포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한 충동과 더불어 남한을 사람 못살 곳으로 계속 비방중상하고 있는 북한통치자들의 터무니없는 기만성에 대하여 더욱 격분을 느꼈습니다.
북한 통치자들은 노동자·농민의 나라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떠벌리고 있지만 지금 노동자·농민은 기아와 빈궁속에서 초보적인 생존의 권리마저 빼앗기고 있으며 금수강산으로 이름높던 산과 물도 생기를 잃고 황폐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참한 현실은 전적으로 그릇된 정치체제와 범죄적인 무력통일 정책, 반인민적인 지도사상이 가져다준 결과입니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철두철미 수령의 개인독재체제입니다. 정권도, 당도, 군대도 다 수령의 개인소유물이며 심지어 민족도, 국가도 수령의 것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4월20일 도착성명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북한의 무력남침 위험성을 알리고 평화통일에 기여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북측은 말로는 평화통일을 떠들지만 전쟁에 의해 남을 말살하려는 방법으로 철두철미한 무력통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믿을 것은 무기와 군대 뿐이라고 하면서 40여년동안 전쟁준비에만 열중하여 왔습니다.
북측의 전쟁준비는 상상을 초월하며 북한 사회는 전쟁분위기로 일색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내에서는 북침위험을 믿는 사람은 없으며 북침위험을 떠드는 당사자들도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북한의 자립경제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남은 것은 군대뿐입니다.
북한 통치자 앞에는 자기 정치체제의 실패를 자인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그가 믿고있는 군대에 의거하여 새 전쟁도발의 모험을 감행하는 범죄의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두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식량원조를 받으면서도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고수한다고 허장성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혁·개방의 의사가 없고 전쟁도발의 길만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날로 강화되고 있는 군국주의와 군사독재의 출로가 전쟁밖에 없다는 것은 심각한 역사적 교훈입니다.
저는 다년간 북한 통치의 참모부에서 일하면서 북한 통치자들의 전쟁도발 의지를 온몸으로 절실히 체험하였으며 새 전쟁으로 우리민족이 겪게 될 비극에 대하여 남달리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북한의 현실에 실망하고 남한에 기대를 걸고있던 우리는 남한동포들에게 전쟁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고 오늘의 엄중한 상태를 보고만 있는 것은 자기 생명의 모체인 민족을 배반하는 범죄가 된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남행을 결의하여 나섰던 것입니다.
남침이 성공할 경우 전쟁을 일으킨 북측보다 통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남측이 민족과 역사앞에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봅니다. 다가오는 전쟁을 막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며 우리 민족의 안전과 휘황한 미래를 확고히 지키기 위해 모두다 단결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한국정부와 남한형제들이 우리에게 돌려주는 따뜻한 배려와 훌륭한 생활조건에 도취되어 북한동포의 고통과 불행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봉건적 군사독재하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동포를 해방하기 위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목숨바쳐 싸우려는 동지들과 함께 와신상담하며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남한 형제들의 지지성원밑에 전쟁을 막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적통일을 이룩하는데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갈 것을 국민여러분 앞에 다시금 맹세하는 바입니다. 1997년 7월10일 황장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