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열린 1차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해외채권단이 무리한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해외채권단은 우리 정부와 국내 채권단에 지급보장과 워크아웃 승인권을 요구했던 것이다. 채권 회수의 안전판을 확보하고 워크아웃도 그들의 입맛대로 끌고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어 보인다.물론 해외채권단의 요구가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호락호락 넘어가리라고 예상했던 것도 아니다. 대우의 채무이행이 당장 어렵게 되면서 채권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확실한 정부의 지급보장을 받아두고 워크아웃 승인권도 가져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 자세를 나쁘다고 몰아붙일 수 만은 없다.
그러나 정부의 지급보장이나 워크아웃 승인권까지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고 억지라 하지않을 수 없다. 채권 채무 관계는 어디까지나 민간 기업끼리의 관계이지 정부가 민간기업의 채무를 지급보증하는 일은 부당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고 전례를 만들어서도 안된다. 워크아웃 승인권도 그렇다. 전체 채권중 해외채권단의 채권은 10%에 불과한데 90%의 몫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수다.
더욱이 국내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추진하면서 신규자금을 지원하고 출자전환 등의 손실이 불가피한 형편인데 해외채권단은 한푼의 손실도 입지않고 잇속만 챙기려 하면서 동등한 대우를 바라고 있다. 아무래도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외채권단도 부실 대출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려면 손실도 동등히 분담해야 이치에 맞는다.
국내 채권이 90%이므로 워크아웃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해외채권단을 더 설득하여 책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해외채권단을 완전히 배제하고 추진할 경우 국가신인도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다른 국내 기업의 신용한도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대우의 해외법인이나 해외 영업망이 방해를 받아 미래의 현금흐름이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채권단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대우의 워크아웃에 차질이 생기고 계열사가 법정관리나 청산절차에 들어갈 경우 더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워크아웃에 차질이 없도록 채무유예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한다. 분명한 것은 대우가 살아야 빚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