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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ㆍ1운동과 1923년 일본 관동(關東ㆍ간토) 대지진 때 일제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징병자 세부 명부도 나와 일제 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ㆍ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 등 67권에 대한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지난 6월 주일 대사관 청사를 신축하기 위해 이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들 명부는 1952년 12월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로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해당 명부에는 3ㆍ1운동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게 희생당한 한국인 총 630명과 관동 대지진 당시 피살된 290명의 명부가 실려 있다. 또한 1953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에는 22만2,9781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3ㆍ1운동시 피살자 명부'에는 1권 217장에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으며 읍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 일시, 순국 장소, 순국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ㆍ1운동을 하다 순국한 이들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 수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그 숫자는 3배 가까이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3ㆍ1운동 피살자 수는 7,509명이다.
국가기록원은 또 1923년 9월 일어난 일본 관동 대지진 당시 피살된 재일 한국인 290명의 명단도 발표했다. 관동 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 수는 6,661~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명부에도 희생자 이름과 함께 본적과 나이, 피살 일시와 장소ㆍ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들이 학살당한 방식도 피살과 타살ㆍ총살 등으로 다양하게 기재돼 있다.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으로 65권에 22만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이는 역시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28만5,771명)'에 비해 5만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록원은 내다봤다.
실제로 경북 경산 지역의 경우 피징용자 4,285명 중 1,000여명이 종전 명부에는 없는 새로운 명단으로 밝혀졌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ㆍ1운동과 관동 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거사 증빙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기록원은 이번에 수집한 자료를 국가보훈처 등 관련 부서에 넘겨 독립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자료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명부별 세부사항을 정리해 내년 초부터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명부는 전국적인 정부조사 결과인데다 주소나 생년월일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세세해 앞으로 피해보상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