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직후 휴지조각(정크본드)수준으로까지 떨어진 국가신용등급이 1년만에 투자적격으로 회복됐으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뻐만 할 일도 아니다. 벌써 외신은 한국민의 자만을 경고하고 있다.지금 김포국제공항은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북적대고 있다. 지난해 12월 내국인 출국자들은 29만4,000여명으로 전년 같은기간 대비 36.8%나 늘어났다. 올들어 지난 10일 현재 출국자는 12만5,000여명으로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32.8%가 증가했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1월 한달간 출국자수는 작년 1월 대비, 무려 50%가 늘어난 3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IMF사태 이전의 수준이다.
이번 설(2월16일)연휴도 심상치 않다. 일요일을 포함, 나흘간에 걸쳐있는 설연휴 기간동안 동남아나 남태평양 등 유명 해외관광지로 연결되는 항공편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다.
전국의 스키장과 관광지의 호텔·콘도 등의 예약률도 이미 100%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무더기 해약사태로 곤욕을 치렀던 여행·숙박업계는 올 설연휴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백화점 세일도 발디딜 틈이 없다. 영국의 한 유명브랜드 의류는 100만원대가 훨씬 넘는 고가인데도 며칠만에 동이 났다. IMF사태로 우리나라를 철수했던 외국의 유명 화장품이나 의류회사들도 다시 들어오고 있다. 요즘 일부계층의 소비모습이 마치 지난 1년동안 마음껏 쓸 수 없었던 데에 대한 한(恨)풀이 같다.
IMF사태 1년동안 내수가 꽁꽁 얼어붙어 대기업을 제외하고선 중소규모의 제조업은 거의 도산했거나 도산일보직전 상태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국민들의 소비를 적극 유도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소비양태(樣態)는 건전 소비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외환보유액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해외에 나가 달러를 마구 써 대거나 고가의 사치성 물품을 구입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도 200여만에 가까운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길거리에 나 앉아 있다.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형편이 못된다. 제2의 환란(換亂)가능성도 상존(尙存)하고 있다.
자칫 일부계층의 과소비행태가 정부와 국민들이 벌이고 있는 경제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 얹으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IMF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