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은행권에서 이번에는 대출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대출서류 조작이 한 지점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 다른 지점에서도 일어나 것으로 밝혀져 가뜩이나 금리조작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은행권이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출서류 조작의 전모는 이렇다. KB국민은행은 중도금 대출을 신청한 회사원 안모씨 등 30여명의 대출서류에서 대출기간을 신청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임의로 변경했다. 대출계약서 원본의 숫자를 조작해 당초 3년 만기로 계약된 상환기간을 2년2개월로 바꾼 것이다. 담당 직원이 숫자 '3'의 아랫부분을 긁어내 '2'로 바꾸고 뒤에 '2개월'을 추가로 적어 넣거나 숫자를 모두 긁어내고 도장으로 '2년2개월'을 찍어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계약 당시 중도금 대출의 상환시기를 3년으로 잡았다가 본부의 대출승인 과정에서 입주시기를 고려해 만기를 2년2개월로 줄여 재계약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담당 직원이 이를 따르지 않고 숫자만 바꿨다는 게 국민은행의 설명이다.
안씨 등은 중도금 대출의 상환시기를 앞당겨 잔금 대출로 넘기고 기한이익(법률행위에 기한을 두는 채무자의 이익)을 잃게 하는 목적으로 은행이 서류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은행은 담당 직원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어떠한 목적을 갖고 조직적으로 서류조작을 지시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출 계약서 조작이 한 지점만이 아니라 다른 지점에서도 이뤄진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직원의 단순 업무 착오나 과실로 덮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일선 지점에서 고객 서류 등을 조작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고객과의 계약 이후 상황이 바뀌면 은행이 고객 동의를 구해 계약 내용을 바꾸거나 재계약하는 절차를 거친다"면서 "그러나 드물긴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기존 서류의 내용만 조작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번 대출서류 조작과 관련해 다른 은행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아직 추가로 확인된 게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의 영업행태가 엇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민은행에 이어 다른 은행에서도 대출서류 조작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CD금리 조작 의혹과 더불어 은행권에 일고 있는 파문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