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재계에서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강덕수 STX그룹 회장, 박병엽 팬택 부회장 등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기업인들이 연이어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극심한 경기불황과 무리한 사업확장의 여파로 마지막 위기를 넘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중소업계에서는 이에 아랑곳없이 샐러리맨의 신화를 꿋꿋하게 이어가는 기업인이 있다. 바로 이재광(54) 광명전기 회장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로 불리는 이 회장은 광명전기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광명전기 오너까지 오른 중소업계의 대표적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특히 가업을 물려받지도, 창업가도 아니면서 한 기업의 정점에 섰다는 흔하지 않은 이력 덕분에 세간의 이목을 끌어왔다.
무엇보다 이 회장이 남다른 DNA의 소유자로 인정받는 부분은 뛰어난 경영능력이다. 특유의 리더십과 뚝심을 발휘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광명기기를 중전기기 분야 국가대표 강소기업으로 일궜다. 진중한 성품과 일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혁신하고, 투자하고 기술개발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제 국내를 넘어 글로벌 리딩기업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중소업계에서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가 새롭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신입사원 기업 오너되다=이 회장이 건국대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 광명전기다. 1982년 입사 후 가장 먼저 팀장이 되기까지 입사 동기들보다 일을 즐기고자 노력했고 열정이 남달랐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1993년 직접 경영을 해보기로 마음 먹고 회사를 나왔다. 마침 알고 지내던 납품업체 사장이 "이 팀장이 회사 경영을 잘 할 것 같다"라는 회사 인수를 제의해 전세자금과 대출 등 2억5,000만원을 마련해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0년 뒤 매출 5억원짜리 한빛일렉컴이라는 회사를 50억~60억원 알짜기업으로 키웠다. 경기도 시화에 공장도 준공하며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그러던 중 이 회장은 당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고 해마다 성장세를 보이던 광명전기가 2002년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광명전기는 명동 사채업체에 인수되고 모진 풍파에 휘말렸다. 사장이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노조가 이를 고발하는 등 회사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이런 상황에서 광명전기 옛 직장 동료들이 이 회장에게 SOS를 보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광명전기를 구해달라"는 것. 이 회장은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이를 수락했다. 즉시 한빛일렉컴을 매각해 45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광명전기 인수에 나섰다. 그 와중에 광명전기 노조 역시 '광명전기를 잘 알고 직원들과 화합할 수 있는 대표로 추천하고 지원한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하면서 이 회장의 인수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2003년 8월 주총에서 이 회장은 광명전기 대표로 정식 취임했다. 신입사원이 21년 만에 그 기업의 오너가 되는 순간이었다.
◇부도직전 회사를 강소기업으로=이 회장이 광명전기를 인수할 당시 매출액은 약 300억원. 하지만 적자투성이의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체질개선이 시급했다. 이 회장은 일단 매출 500억원대를 목표로 내세웠다.
'3ㆍ3ㆍ3'계획도 내놓았다. 3년 내 기업 경쟁력을 경쟁사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3년 뒤에 동등하게, 나머지 3년 뒤에는 앞서겠다는 포부였다. 당시 무모해 보이기만 했던 이 공약은 10년 뒤 현실화됐다.
올해 광명전기 매출만 1,000억원으로 예상되고 계열사인 피앤씨테크(200억원)와 광명에스지(240억원)가 지난해 매출액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광명전기 전체 매출이 이 회장 인수 당시보다 5배나 성장한 것이다.
회사 규모도 커졌지만 광명전기의 가치는 앞선 기술력으로 더 평가 받고 있다. 수배전반, 부스덕트, 가스절연개폐장치(GIS), 개폐기류, 차단기류, 통합감시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을 제치고 종합 중전기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피앤씨테크의 경우 세계 일류상품을 두 가지나 보유하고 있고 최근 뛰어든 태양광발전설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광명전기가 국내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으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5년 내 매출 5,000억원, 10년 내 1조원 시대를 열겠다"며 "지금처럼 매년 15~20% 성장을 이룬다면 충분히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영업이익률 또한 3~4%에서 8% 성장을 이루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광명전기를 외국에서도 모범 혁신기업으로 명성을 떨치는 글로벌 리딩기업으로 이끌어보겠다"고 강한 열망을 내비쳤다.
◇행복경영인에서 사회공헌 전도사까지=이 회장은 행복한 직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본인 스스로 창업자가 아니라 신입사원에서 출발했기에 누구보다 직원들의 고충이나 불만을 잘 안다고 말한다. 그는 "직원들과 같이 가는 회사, 형ㆍ동생처럼 서로 돕고 결속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며 "직원들에게 급여나 성과급을 줄 때 가장 기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일까. 광명전기는 조직 구성원간의 끈끈한 정과 최고경영자(CEO)의 따뜻한 관심으로 업계에서는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광명전기 직원들은 회사를 행복한 직장, 즐거운 직장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ㆍ가정 양립 지원 및 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해 일하는 재미가 넘치는 훌륭한 일터 구현을 한 업체에 주는 '경기 일하기 좋은 기업'인증과 '안산시 노사화합부문 중소기업대상'이 이를 말해준다.
이 회장은 "규모가 작은 만큼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이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인간적인 정'으로 정했을 뿐"이라며 "조직이든 구성원이든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느냐에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행복경영론은 사회공헌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회사만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사는 삶이 필요하다는 지론이다. 현재 이 회장이 중앙이사를 맡고 있는 한국기아대책기구를 비롯해 중소기업중앙회의 사랑나눔재단, 나라사랑 독도사랑 등에 광명전기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급여의 일부를 매달 기부하고 있다. 또 특성화고ㆍ마이스터고와 협약을 체결해 맞춤형 인력양성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우수인력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 회장의 다양한 활동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회장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으로서 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전기계를 비롯한 다양한 업종의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대변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워낙 맡은 일이 많아 하루 쉴 틈 없이 분주히 움직인다"며 "하지만 치밀한 계획과 빈틈없는 준비성, 강력하고도 정교한 추진력을 통해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는 완벽주의자"라며 깊은 신망을 보내고 있다.
● 이재광 회장은 ▲1959년 충남 홍성 ▲대전 대성고 ▲대전공전 전기과 ▲건국대 전기공학 ▲숭실대 경영학 석사 ▲광명전기 대표이사 회장 ▲한국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중소기업학회 부회장 ▲대한전기협회 감사 ▲한국기아대책기구(NGO) 중앙이사 |
"인재·기술 없으면 죽는다"… 매년 R&D에 40억 투자 ■ 지식경영 전도사 홍준석기자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인 이재광 회장은 중소업계의 대표적인 정책통으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의 브레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해외 정책포럼이나 국내 포럼에 중소업계의 대표 패널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다. 이는 이 회장의 지식경영과 인재교육을 중시하는 경영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지식경영에 나선 것은 조그마한 중소기업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직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명전기를 인수한 뒤 지금까지도 직원 교육에는 남다른 투자를 행하고 있다. 이 회장 본인도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경영을 잘 하려고 경영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숭실대 중소기업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임직원들에게 강의도 하고 건국대ㆍ원광대ㆍ수도공고 등에서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는 또 임직원들에게 최고의 전문가가 되라고 역설한다. 기술ㆍ생산은 물론 영업직까지도 분야별로 일반사용자를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전문가가 돼야 설득이 쉽고 결국 이해시켜 영업이 잘 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가장 큰 책무는 기업의 지속성인데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회사를 발전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지식의 인풋(input)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경영자나 직원들이나 학습을 하지 않고서는 변화와 발전할 수 없다"고 지식경영의 지론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인들이 기술개발에 충실해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지식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고 모멘텀을 찾지 않으면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가기 힘들다"고 기술경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실제 광명전기는 1986년 기업부설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매년 연구개발(R&D)에 매출액의 5%에 상당하는 4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투자규모다. 전문연구 인력이 직원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연구인력을 1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덕분에 광명전기는 특허 38건을 비롯해 KS인증ㆍUL인증ㆍ녹색기술인증ㆍ녹색제품인증ㆍINNO-BIZ 인증 등 국내외 다양한 기술 관련 인증을 확보하고 있다. 아울러 배전반에서부터 신재생ㆍ스마트그리드 제품까지 지능형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융ㆍ복합 스마트 전력기기를 생산하며 혁신ㆍ창조의 아이콘으로 평가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