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섬’ 마라도

한반도의 남쪽 끝에 자리잡은 마라도는 쉽사리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번엔 반드시…`라며 단단히 벼르고 간 그 날도 바다는 흩뿌리는 장대비로 온통 제 몸을 감추고 섬의 윤곽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제주도 날씨는 워낙 변덕스러운데다 마라도 가는 뱃길은 특히 출렁이는 놀이 유명하다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기적이 일어났다. 거짓말같이 하늘이 환하게 개이면서 희뿌연하나마 마라도 가는 길목에 있는 형제도, 가파도 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여객선 터미널에서 오늘은 아침부터 배를 띄운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그러나 먼 바다로부터 밀려 오는 높은 파도는 40여분에 걸친 짧은 항해를 롤러코스터를 타듯 만들었고 이내 몇몇 승객들이 머리와 배를 움켜잡고 나뒹굴었다. 마라도는 한마디로 태평양에 떠 있는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동서폭 500m, 남북길이 1km 남짓에 전체 면적이 약 10만평에 불과하다. 섬 주변을 온통 천연의 수직절벽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거대한 배 위에 올라 탄 착각이 들게 한다. 동쪽이 약간 높고 서쪽이 낮아 해발 39m 높이에 있는 등대 주변에 올라 서면 장애물이 거의 없는 섬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라도는 젊은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벤치에 앉으면 `해돋이`와 `해지기`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득 어린 왕자가 소개한 별 하나가 떠 오를 것이다. 어찌나 작은 지 의자 하나만 달랑 들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저녁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그 별. 어쩌면 마라도가 바로 그 별인지 모른다. 우선 선착장에 닿으면 자전거를 한 대 빌린다. 1인용은 3,000원, 2인용은 5,000원이다. 혼자든 둘이든 자전거 바퀴를 돌리다 보면 시커먼 현무암 덩이에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바위를 볼 수 있다. 마라도의 수호신격인 이 바위는 옛날엔 해신제를 지냈고 일제 때는 일본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던 곳이다. 장군바위 옆에 있는 `대한민국 최남단비`는 그냥 지나쳐도 좋을 듯하다. 그 보다는 여기서 잠시 낑낑대고 오르다 보면 마라도의 최고점인 등대옆 공터에 닿는다. 주변에 놓인 벤치 위에 앉아 잠시 눈을 감으면 하늘이 빙빙 돌듯한 아스라한 현기증을 느낀다. 섬이 움직이고 있다. 거대한 `항공모함`이 위로는 하늘 빛을, 옆으로는 바다 빛을 온통 한 몸에 받으며 어디론가 천천히 흘러 가고 있다. 머리 곁을 스치는 한줄기 바람이 항해의 속도감을 더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속의 모든 것들이 마치 비현실로 느껴진다. 문득 `어린 왕자`의 환영이 별똥별처럼 뇌리 속을 스친다. ◇마라도 가는 길=제주공항에 내리면 남제주 대정읍에 있는 모슬포항이나 송악산선착장으로 향한다. 100번 시외버스(3,000원)를 타거나 택시(2만5,000원)를 이용한다. 모슬포항에서는 하루 두번(오전 10시, 오후 2시) 도항선을 운항하며, 송악산 선착장에서는 유람선을 하루 6~7차례(오전 9시반~오후 3시까지) 띄운다. 도항선을 이용하면 나올 때 유람선을 탈 수 없고 유람선은 왕복으로만 끊는다. 요금은 도항선 1만1,100원, 유람선 1만5,000원. 문의 모슬포항 (064)794-3500 송악산선착장 (064)794-6661. ◇숙박 및 식사=마라도에는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이들이 제공하는 10여개의 민박집외엔 따로 숙박시설이 없다. 마라도민박(792-8506)이나 제일민박(792-8512)에선 인근에서 잡은 자연산 도미회와 식사를 제공한다. 숙박은 1박에 3만원, 회는 한접시 1만원부터. 낚시를 원하면 낚시도구를 따로 준비해야 하며, 배는 민박집에서 알선한다. 선착장 입구엔 관광객들을 겨냥한 두개의 짜장면 집의 경쟁이 치열하다. 원조짜장면(792-8506)과 짜장면 시키신분(792-1434)이 가격이나 차량을 이용한 호객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짜장면 가격 4,000~5,000원. <마라도(제주)=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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