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가 재판할 때 오판을 내리지 않을까 항상 두렵다고 말한다. 엄살이 아닐까. 판사들은 외계인이 아닌 같은 고민을 하는 이웃 사람들이라고도 강조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가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유석(45·사시 36회·사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는 판사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당당히 속을 내보이고 소통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지난 2012년 광주지법 초임 부장판사 시절 판사사회의 일상을 위트 있게 담아낸 글 '초임 부장판사의 일기'를 법원 게시판에 올려 인터넷 세상에서 스타가 됐다. 그리고 2년 후 10여년 동안 자기성찰의 글들을 모아 엮은 책 '판사유감(21세기북스)'을 출간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 KT&G타워에서 가진 북토크쇼에서 만난 문 부장판사는 "사법 서비스가 수요자인 국민들의 눈높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법관으로서 갖는 반성과 고민을 적극 알리고 소통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8년 동안 맡은 크고 작은 재판에서 부당한 외압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자신할 정도로 우리의 사법 독립은 최고 수준"이라며 "다만 법 운용 면에서 나타나는 여러 미흡한 점이 사법 불신을 불러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기업인 범죄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지만 정작 재판 결과에 따라 인생이 좌우되는 서민, 소외계층은 더 세심한 배려와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이 필요한 대상이다.
문 부장판사는 지난해 소송전을 스무 번 이상 치른 한 민사사건 피해자 사례를 들었다. "이길 가망성이 없는 상황에 놓였지만 그 피해자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줬지요. 판사에게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하소연하는 기회를 가진 그 피해자는 결국 소송에서 졌지만 매번 반복했던 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문 부장판사는 법관이 시민사회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적 공분의 대상을 처벌하기 위해 법원이 가속 페달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라며 "오히려 국민들을 짜증 나게 할지언정 재판이 원칙에 준거해 이뤄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하는 게 법관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법 감정과 멀어진 판결이라면 그 이유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사법 불신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듭하는 신중과 고민은 오판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오판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는 "오판으로 다른 사람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극복하기 정말 어렵다"며 "인지적 오류를 깨닫고 때때로 무력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엄벌주의로 일관하는 양형은 경계하지만 윤리를 저버리는 살인·성범죄·장애인에 대한 범죄 등의 처벌은 강화 필요성이 있다는 개인적 소신을 밝혔다. 그동안 모든 범죄 양형의 암묵적 기준이 된 살인죄가 징역 13년 정도로 선고되다 보니 다른 범죄에 대한 판사들의 양형선고가 순차 하향했고 결국 성범죄 같은 흉악범에게도 낮은 형량이 선고돼 심각한 여론 비판에 직면했다는 것. 그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최근 5년 동안 급격히 올라갈 만큼 판사들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며 "다만 형벌이 사법의 본질이 아닌 만큼 양형선고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88학번) 출신인 문 판사는 1997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판사생활을 시작해 하버드 로스쿨, 법원행정처, 서울고등법원 등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쳤다. '솔직히 그냥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서' 사법고시를 치르고 판사가 됐다. 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젊은 판사가 목격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따가운 시선들이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판결에 대한 중압감으로 자녀들에게조차 판사라는 직업을 권유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판사의 소임에 대한 질문에 "표면적으로 판사의 역할이 분쟁해결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판사 일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배워갑니다. 판사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요. 그래서 역할의 한계에서 오는 부족함과 오해에 대해 많이 설명하고 공감을 얻도록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