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핵은 죽음이다`라는 구호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핵`또는 `원자력`이라고 하면 흔히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떠올리기 때문에 이런 구호가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방사선이라면 무조건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술을 1~2잔 정도 마시는 것은 건강에 좋지만 소주를 한 자리에서 3~4병씩 마신다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방사선도 마찬가지다. 적정량 이하의 방사선은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암 치료, 오폐수 처리 등을 위해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우라늄 등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물질을 방사성 물질이라고 한다. 또 이런 물질이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방사능이라고 한다. 방사선, 방사능 물질, 방사능의 관계는 건전지를 생각하면 된다. 방사성 물질은 바로 건전지에 해당되고, 방사선은 건전지에서 흘러나오는 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방사능은 건전지의 세기라고 할 수 있다.
◇방사선은 땅에서도 나와=흔히 방사선은 원자력 발전소나 원자폭탄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도 방사선은 나온다. 지구를 비롯한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양자와 중성자가 결합하면서 많은 방사성 물질이 생겼다. 방사능 물질이 갖고 있는 방사능의 효력이 원래의 절반수준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半減期)라고 한다. 방사성 물질 가운데 반감기가 1~2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우라늄-238처럼 무려 45억년의 반감기를 갖고 있는 것도 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은 현재 미미하나마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다.
흔히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인공방사선`이라고 하는 반면 땅이나 대기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을 `자연방사선`이라고 한다. 인공방사선이 자연방사선보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원자력발전소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인근의 방사선 량(量)은 자연방사선보다도 적어=방사선의 세기는 `밀리시버트`라는 단위를 사용해 측정한다. 땅이나 대기에서도 방사선이 방출되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가 본적이 없더라도 누구나 1년간 평균 2.4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받는다.
원자력발전소나 원전 수거물에서 나오는 방사선도 마찬가지다. 원자력발전소 근무자들이 연간 받게 되는 방사선량은 평균 2밀리시버트다. 결국 원전 근무자들은 한 해에 약 4.4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받는다. 원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추가로 받는 방사선 양도 연간 0.02밀리시버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연방사선을 포함해 연간 약 2.42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받는 셈이다.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의 경우 중ㆍ저준위 폐기물이나 사용 후 연료를 밀폐해 보관, 처리하기 때문에 그 주변지역에서는 자연방사선 이상의 방사선량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브라질 등 일부 지역에서는 원전 근무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자연방사선을 받는다. 브라질 가리바리지역의 경우 연간 방출되는 방사선 양이 10밀리시버트에 달한다.
방사선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려면 1,000밀리시버트는 넘어야 한다. 보통 1,000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받으면 구토 또는 설사증세를 나타낸다. 7,000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받을 경우 몇 일이내에 사망한다.
◇방사선의 영향은 누적되지 않아=적은 양의 방사선이라도 자주 쐬면 위험할 것이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방사선 양이 미미한 수준이라면 반복해서 받더라도 그 영향이 누적되는 것은 아니다. 적은 양의 방사선을 받더라도 우리 몸은 자연치유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이 누적되지 않는다.
미국 원자력발전소 근무자나 병원의 방사선 작업자의 경우 연간 방사선 허용치를 50밀리시버트로 제한하고 있다. 매년 50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을 받을 경우 기대수명 단축기간은 약 23일에 달한다. 반면 흡연자나 애주가의 기대수명 단축기간은 각각 7년, 1년에 달한다. 결국 흡연이나 음주에 비해 방사선 노출에 따른 영향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임석훈기자 sh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