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범정부적 재조명사업은 제3공화국 시절 충무공 이순신장군 유적 성역화 사업이후 처음이다.장보고는 통일신라 말기인 AD 790년께 지금의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당나라에 건너가 상당한 지위에까지 오른 무장이다. 828년 귀국후 장보고는 흥덕왕으로부터 「청해진 대사」로 임명돼 완도군에 청해진 본영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해상활동에 나선다. 그는 당시 서남해안 일대에 창궐하던 해적을 소탕하고 나·당·일본과의 3각 해상교역으로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쌓아 올린다.
그러나 846년(文聖王 6년) 경주를 중심으로하는 중앙집권 세력에 의해 장보고는 암살당하고 5년후에는 청해진 마저 완전 해체된다. 장보고는 사후에도 역사가들의 편견으로 거의 묻히다 시피 한 비운의 장군이다. 이제 1,100여년만에 부활하는 것이다.
정부가 장보고에 대한 재조명·평가에 나서는 것은 그의 해양개척정신을 사표로 삼아 21세기 해양부국으로 도약하자는 뜻에서다. 장보고는 당시 청해진을 중심으로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동남아는 물론, 멀리는 아라비아에까지 교역을 넓혔다.
당시의 항해술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양학을 연구하는 외국인학자들은 장보고의 이같은 활약상을 「세계정복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속에 묻어버린 해상왕을 외국의 학자들은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은 지난해 창간 38주년 기념사업으로 「신 장보고시대」를 5개월간에 걸쳐 특집 기획으로 연재, 각계 각층으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기를 예비하는 우리로서는 장보고의 웅장한 기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사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다는 자원의 보고요 또 하나의 영토다. 정부가 장보고에 대한 재조명·평가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서 시의(時宜)에 적합한 사업이다.
우려되는 것은 정부사업이 갖는 경직성과 사업을 위한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왜 장보고인가를 국민들에게 적극 이해시켜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