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설계사는 동원중

보험설계사 김모씨는 요즘 보험상품 판매보다는 각종 탄원서에 서명하느라 정신이 없다. 최근에 김씨는 이달 말부터 효력을 발휘하는 설계사 ‘1사 전속주의 철폐’ 법률안을 반대하는 청원서에 서명해야 했다. 설계사 전속주의 폐지 법안은 2년여 전에 입법예고됐다. 전속주의가 폐지되면 생명보험회사 소속 설계사는 손해보험회사 한곳에 추가로 소속해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 역으로 손보사 소속 설계사들도 생보사 한곳의 상품 판매가 가능해진다. 보험회사들은 이달 하순에 열리는 임시국회를 앞두고 전속주의 폐지를 2년 정도 연기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은행의 방카슈랑스 판매확대와 외국계의 진입으로 가뜩이나 영업이 어려운데 전속주의마저 무너지면 보험사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해진다며 법안 개정에 총력을 쏟고 있다. 보험사들은 설계사들을 앞세워 여야 의원 면담을 주선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전국적으로 10만명이 넘는 설계사들이 전속주의 유지를 원한다는 내용에 서명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으로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설계사들의 표심을 마냥 회피할 수 없어 전속주의 연기를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보험사에 알려왔다. ‘표’의 힘이 여야를 협력하게 만든 셈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설계사들이 전국 각지의 밑바닥을 훑으며 여론화하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정치권도 끝내는 설계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낙관했다. 생보ㆍ손보사들은 설계사 서명이 자발적이라고 강조하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설계사 김씨는 “예고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뒤늦게 분주하다”면서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 나올 때마다 서명과 실력행사를 요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험회사들이 이해관계가 걸릴 때마다 설계사들을 대규모로 동원해 실력행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 여의도 국회 앞은 방카슈랑스 3단계 실행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설계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수년 전부터 예고된 정책에 대해 막판에 사사건건 실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지 보험업계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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