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적합업종] <上> 한계 드러낸 동반위

여론 눈치에 중재력 실종… 中企마저 외면

적합업종, 협상없이 일방 추진… 수입콩 문제땐 협상카드 논란
권위 실추…"실효성 없다" 지적
잇단 통계 오류로 신뢰성 상실
사회적 합의 도출 취지 못살려 산업발전 막는 규제기구 전락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시행 5년만에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 지정 기간이 만료된 77개 품목의 적합업종 재지정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재 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중소기업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이 때문에 동반위를 해체하고 별도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적합업종 법제화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4월 새로운 위원들로 구성되는 동반위 3기 출범을 앞두고 현행 적합업종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지난 2월 24일 동반성장위원회는 문구소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형 마트의 문구품목 매출액을 지난해 수준으로 제한하고 신학기 할인행사를 자제하도록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구 관련 소상공인단체인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가 반발하고 나서 동반위를 당혹스럽게 했다. 협상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반위가 일방적으로 적합업종 지정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후 의견 조율을 시도했지만 지정 발표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동반위 내에서도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 절차를 밟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국산콩 사용 확대를 위해 수입콩 가격 인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합업종이 협상카드로 전락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협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원산지와 관계없이 두부의 적합업종 지정 기간을 연장하기로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는데 중소기업에서 국산콩 두부에 한해 양보하겠다는 카드를 꺼내들며 수입콩 인상안을 무마하려 한 것이다.

이 같은 사례를 두고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는 "적합업종 제도가 만들어진 2011년에는 동반위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기대가 컸었지만 지금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이번 재지정 논의 당시 협상에 진척이 없자 차라리 공정거래위원회나 국회, 법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조언들이 쏟아져 동반위의 추락한 위상을 실감했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동반위의 위기는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존 적합업종 지정 품목의 재지정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13년 말부터 잇단 통계 오류에 따른 신뢰성 추락으로 '여론전'에서 밀리면서 동반위의 권위마저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경련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보호를 받은 중소기업의 경영실적이 나아졌는지를 평가하면서 정반대의 조사결과를 내놨지만 누구 말이 맞는지를 두고 공방만 이어졌을 뿐 적합업종 제도의 정책적 타당성을 심도 있게 점검하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동반위는 적합업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반전시키는데 실패했고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기구로 낙인만 찍혔다. 2기 동반위에서 활동한 한 위원은 "언론 등 여론주도층을 만나 끊임없이 적합업종의 긍정적인 측면을 알리고 잘못된 통계를 바로잡아야 할 동반위가 여론에 휘둘리기만 한 것이 문제"라며 "동반위를 정부 기구로 두는 대신 민간협의체로 둔 것은 소위 논리싸움을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가라는 의미인데 지난 4년간 동반위는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데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 교수는 "적합업종 제도가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중소기업들부터 이 제도의 권위를 높이고 생산성 향상과 품질개선 등 자구노력을 해야 하는데 상당수 품목에서 그런 노력을 엿보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편평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적합업종 제도가 3년만에 위기를 맞은 데는 중소업계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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