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베티 데이비스 탄생 100주년

남성위주 할리우드에 도전
'고약한 암캐' 악명도 얻어


지난 5일은 할리우드 황금기 스크린을 군림한 베티 데이비스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데이비스는 LA 인근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가 있는 버뱅크의 포레스트론 할리우드힐스 묘지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묻혀 있다. 데이비스의 묘비명은 ‘그는 필사의 노력을 다해 이루었노라’로 이는 데이비스의 삶을 한 마디로 나타낸다. 성질이 불같고 오만할 정도로 콧대가 높았던 데이비스는 삶을 전투처럼 산 여자로 자신의 전성기인 1930~40년대 남자들의 세상인 할리우드 체제에 끊임없이 도전해 ‘고약한 암캐’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특히 그는 배역 문제로 전속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의 잭 워너 사장을 고소, 당시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데이비스는 패소했지만 그의 용기에 감탄한 워너는 그 후 데이비스에게 좋은 역을 계속 제공했다. 그는 웬만한 남자 알기를 신발 흙털개처럼 여겼다. 그 도도한 얼굴과 자세에 딱 어울리는 성품의 소유자다. 두 번 째 오스카 수상작인 ‘제저벨’(1938ㆍ사진)과 ‘편지’와 ‘작은 여우들’에서 데이비스와 함께 일한 명장 윌리엄 와일러(벤허)는 데이비스의 연인이었는데 그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성질에 데어 ‘작은 여우들’을 끝으로 그와 결별했다. 데이비스는 와일러 외에도 하워드 휴즈 등 애인도 많았고 불행한 결혼을 네 번이나 했다. 폭풍의 힘과 해일 같은 성격의 여자로 독설가였던 데이비스는 모든 사람과 일에 대해 오불관언적 태도를 취하며 살았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고독을 한탄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의 전성기 후 무대에서 활동했을 때 주위사람들에게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1989년 81세로 사망한 그의 유작은 임종 2년 전 할리우드의 또 다른 고전적 여배우 릴리안 기시와 공연한 ‘8월의 고래들’. 그는 유방암으로 사망했는데 자기가 암에 걸린 것을 알자 “늙는다는 것은 약골들에겐 안 어울려”라고 말할 만큼 담대한 여자였다. 데이비스의 상표는 어마어마하게 큰 눈으로 이 눈을 가수 킴 칸스은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라는 노래로 찬양한 바 있다. 도톰한 눈두덩 아래 파인 우물처럼 습기에 찬 두 눈은 너무 커 두렵기까지 하다. 데이비스 출생 1세기를 미국에서는 4월 한 달 내내 그의 영화들을 재상영하고 비디오를 출시하는가 하면 전기를 출판하면서 그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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