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짓말 탐지기 믿어야 하나

드디어 거짓말탐지기가 등장했다. 한나라당 대통령 예비후보들에 대한 검증 논란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더니 마침내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대선 한두번 치르는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온갖 구경거리가 있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도곡동에 있는 땅의 실제 주인이 특정 대선 후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생긴 일이다. 이런 식의 의혹 제기야 대선 때마다 늘 있는 통과의례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니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다. 물론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시간이 상당히 지체될 수도 있다. 이 역시 우리 국민에게 낯선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땅이 특정 후보의 땅이었다고 누가 말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벌이는 논란을 보노라면 참 마음이 착잡해진다. 자리를 함께 했던 네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땅의 실제 주인이 특정 대선 후보였다고 말했고 나머지 3명이 그렇게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말했다는 당사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한 논쟁도 아니고 그야말로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니, 내가 언제 그랬냐!”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말싸움판에 관련된 사람들이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자리를 함께 했다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자. 언론계ㆍ관계ㆍ학계 등 사회의 각 방면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그 성공을 기반으로 국회의원은 물론 장관에 부총리, 제1야당의 당대표를 지낸 사람이 포함돼 있다. 한때 이 사회를 풍미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나름대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이런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에게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줘야 할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에 대해 정반대의 말을 함으로써 국민을 더욱 헛갈리게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런데 땅의 실제 주인이 특정 대선 후보였다고 발설했다는 인사가 몇 년 전 감사원 조사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는 감사원 기록이 제시됐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 기록에 대해서도 부정의 발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제는 개인간 대화 내용의 사실 여부를 넘어 국가기관의 조사와 기록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의문은 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야권 대선주자 진영의 치열한 정치적 공방으로 인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거짓말탐지기가 진실을 밝혀줄 수 있을까.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진실이 밝혀진다면 거짓말한 쪽은 그야말로 국민적 망신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는 이런 수준의 진실게임으로 국민에게 피곤함과 불신감을 주는 일은 없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한 조사 결과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기계 자체가 완벽할 수 없으려니와 요령을 알면 거짓말탐지기를 바보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거짓말탐지기의 결과를 신뢰할 만한 증거로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다. 실제로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법원이 증거로 인정하는 곳은 미국 뉴멕시코주와 이스라엘ㆍ일본뿐이라고 한다. 우리 대법원도 지난 2005년 검찰이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뺑소니 피의자의 유죄 증거로 제출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검찰 조사 결과가 이른 시일 내에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조차 정치적 공방의 대상으로 변질돼버리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결국은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앞선다. 진실이 밝혀질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과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의 벽돌을 하나 더 쌓게 될 것인가.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검찰의 의지에 기대를 걸어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