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부 김영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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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난 2월11일. 이헌재 부총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3년반 만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는 역대 어느 경제 수장에 못지않은 ‘힘’이 있었다.
그가 맡은 한국 경제호(號)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비바람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쪽배’였지만 역으로 그의 역량이 더욱 빛을 낼 환경이기도 했다. 한국경제에 더 추락할 공간은 없었고 상승 기류에 따른 ‘단맛’만 향유하면 되는 듯싶었다.
취임 100일을 넘긴 지금 불행하게도 그가 운신할 폭은 안스러울 정도로 비좁다. 대외 환경은 그가 즐겨 입는 진회색 정장만큼 잿빛으로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다.
‘개발연대식 기업가론’을 외치는 그를 둘러싼 것은 ‘개혁 탈레반’들의 고성(高聲)이고 여당의 옛 정책위의장 앞에서 부르짖은 성장의 아젠다는 초라함 만을 남겼다. 탄핵정국 속에서 경제를 버텨준 그에게 대통령이 전해준 것은 개혁을 최대 명제로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물며 이제는 시장 자율을 외치는 재계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넛크래커에 끼인 신세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금 이 부총리의 모습에 이런 현실을 이겨내려는 의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시아개발은행(ABD) 총회에 나온 이 부총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의미를 상실해가는 ‘성장’의 구호였고 5%대 성장률이라는 낙관론에 함몰된 막연한 지표뿐이었다.
이 부총리는 최근 오찬 자리에서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동경하는 발언을 꺼냈다. 그린스펀이 갖고 있는 우호적 환경과 지지를 염두에 둔 듯했다.
하지만 그가 잊은 게 있다. 그린스펀의 환경은 시장을 그에게 순종하도록 시스템을 통해 개척한 것이었다. 관치(官治)의 향수에 젖은 우리네 시장과는 분명 다르다. 이념적 대립 속에서 소극적 자세에 안주하는 이 부총리와 오랜 세월 묵혀온 그린스펀의 카리스마에는 차이가 있다.
이제 이 부총리에게 남겨진 카드는 하나다. 바로 환란을 극복해 초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다. 자신의 정책 철학이 맞다면 사심 없이 밀고나가면 될 일이다. 시장은 바로 그것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