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경제우선을 강조한다. 역대 대통령이 그랬다. 적어도 6공 중반 이후부터 대통령들은 ‘민생안정’이니 ‘경제제일주의’를 주창했다. 과연 그랬을까. 정치만큼 경제에 관심을 쏟았다고 믿기지 않는다. 오히려 무지와 무관심ㆍ무책임이라는 3무(無)로 경제를 다룬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외환위기가 괜히 온 게 아니다.
국고가 바닥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목을 매던 시절에도 관료들은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강변했다. 외환위기 당시 대통령은 위기론을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렸다.
역사는 반복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기를 과장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 관료들이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게 예전과 비슷하다.
외환위기와 지금을 비교하는 게 온당치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침체탈출, 회복 가시화를 자신했던 6월 말이 됐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나빠졌다. 소비와 투자ㆍ물가 등 모든 지표는 ‘지속적 경기침체’라는 단 한가지 방향을 지목하고 있다. 이번주 열리는 경제장관간담회에서 부동산경기의 연착륙 방안이 모색될 것이라는 점은 경기침체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부동산과열을 잡기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낸 게 지난해 하반기다.
더 큰 문제는 알게 모르게 둔감증(鈍感症)에 걸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5월 중 원재료 및 중간재 가격과 그 반응은 둔감함을 말해주는 사례다. 무려 13.5%나 올랐는데도 단지 ‘외환위기 이후 최악’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통계를 따지고 올라가면 2차 오일쇼크 직후인 지난 81년 이후 23년 만의 최대 인상폭이다. ‘외환위기보다 심한 것은 없다’는 일반화의 오류가 둔감한 해석을 낳은 셈이다.
경제는 둔감하지만 정치는 날이 갈수록 민감(敏感)해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과 파병ㆍ원내구성 등 모든 면에서 갈등이 심해지고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사안도 예민하게만 반응한다.
경제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정치에 몰입하는 나라와 시대가 잘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는 게 능사가 아니다. 활짝 여는 게 방법이다. 국민경제가 지닌 모든 감촉을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