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4월 8일] 무뎌진 월가 개혁

지금의 금융 위기와 곧잘 비교되는 지난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월가를 향한 미국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932년 대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초래한 주범으로 은행과 증권사를 지목하고 월가를 개혁의 도마에 올렸다. 의회는 이른바 ‘페코라 위원회’를 열고 당시 월가를 좌지우지하던 JP모건과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거물들을 의회 청문회에 불러내 이들의 끝없는 탐욕과 추악한 작태를 까발리고 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자극했다. 뉴욕주 검사였던 페르디난드 페코라 상원 금융위원위 수석자문관은 청문회를 거쳐 수많은 월가 플레이어들을 탈세와 사기 혐의로 단죄했다. 민주당 정부와 의회는 월가의 강력한 로비를 뚫고 투전판이나 다름없던 월가에 공시제도를 도입한 증권거래법과 투자ㆍ상업은행을 분리한 ‘글래스 스티걸법’ 등 개혁 입법을 마련했다. 시장을 감시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설립된 시기도 이때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월가 경영진 보너스 환수법안이 사실상 무산됐다. 미 하원은 1일 기업실적과 상관없이 지급되는 부당한 보상에 대해 재무장관에 광범위한 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대체 입법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는 분노에 의해 통치하지 않는다“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지 10일 만이다. 보너스 환수법안은 세율 90%의 징벌적 과세와 위헌시비, 대중영합주의 논란 등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월가 개혁을 상징하는 첫 법안이라는 점에서 중도 좌초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회도 좀 더 정교한 법안을 발의했어야 했고 백악관도 이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다. 이번 금융위기를 하나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리스크 추구와 무한 팽창으로 내몬 월가의 보상체계에 있다. 보너스 전액 환수와 같은 충격적 요법 없이는 월가의 탐욕과 이로 인한 리스크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새 법안이나 경기부양 법안에 담긴 보너스 제한 조항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쓰레기 자산을 최고신용등급으로 포장하는데 도가 통한 월가의 천재들이 이런 규제를 피해갈 ‘파생해법’을 찾지 못할 리가 없다. 월가를 ‘약탈자’로 규정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윤을 추구하는 그들을 악마로 봐서는 안 된다”며 변화된 시각을 드러냈다. 지난달 27일에는 은행 최고경영자(CEO)를 백악관으로 초청, 금융시장 안정 대책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월가의 협조를 받는다면 월가의 요구 또한 수용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정권을 장악한 만큼이나 쉽게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됐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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