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2월 9일] 노사정 합의 지켜져야 한다

지난 13년간 시행이 유예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에 대해 노사정이 극적으로 합의했다. 합의안의 내용은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시행을 2년6개월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 무임금 부분은 사업장 실태조사를 거쳐 오는 2010년 7월1일부터 적정 수준의 타임오프제(time-offㆍ근로시간 면제)를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 시행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자칫 큰 충돌로 노사관계에 일대 혼란을 자초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룬 것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교섭창구 단일화 구체적 준비를 복수노조를 당장 허용할 경우의 혼란과 부작용을 감안하면 일정 기간의 시행 유예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교섭창구 단일화의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 등을 준비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유예 기간이 다소 길다는 점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라는 일부의 문제 제기를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교섭창구 단일화의 구체적인 준비를 꼼꼼히 챙겨나가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도한 노조 전임자 수와 이들에 대한 임금지급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불안정과 후진성의 주범이 돼왔다. 타임오프제는 전임자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사 교섭과 고충 처리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노조업무에 대해 근로를 면제해주고 해당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원칙을 지키면서 과도한 전임자 수를 줄이고 노조 활동도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사실 타임오프제는 지난 13년간 노사정위원회 논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이 한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타임오프제 도입에 대한 민주노총과 야당의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노조업무 종사자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타임오프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국제노동기준에도 부합한다. 다만 타임오프의 합리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요건과 대상ㆍ범위를 둘러싸고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노사정은 6개월의 준비기간에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번 노사정 합의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고 노사관계 발전의 큰 전환점을 이룰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노사관계 후진국이라는 멍에를 벗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노사관계의 틀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이제 노동계도 달라져야 한다. 반대와 투쟁만 일삼는 구시대적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타협을 존중할 줄 아는 책임 있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 경영계 또한 개별 기업의 이해를 지나치게 내세워 노사정 합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노사 간 신뢰를 제고해나가야 한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회, 노사정 합의 존중해야 이제 칼자루를 쥔 건 국회다. 정치권은 이번 노사정 합의를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하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거나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노사정이 대승적 차원의 결단으로 이뤄낸 노사관계 선진화의 희망의 싹을 키우느냐 죽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이다.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고 이러한 합의의 정신이 산업현장 전반에 확산돼 건강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선진화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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