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제한, 외국 출생자 공직 진출 금지.' 1850년대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미국 토착주의당(Natvie American Party)의 핵심 정책이다. 이민의 나라에서 이민을 배척하는 정당이 탄생한 배경은 비영국계의 급증. 가톨릭을 신봉하는 아일랜드 이민이 많아지자 '미국을 차지하려는 교황청의 음모론'이 퍼지며 자연스럽게 토착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지역마다 개별적으로 탄생한 이민 배격론자들의 단체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곳은 1849년 뉴욕에서 결성된 국기를 내걸은 성조기단. 가톨릭 계열의 미션스쿨에 교육보조금 지급을 막기 위해 생긴 비밀결사다. 차츰 정당으로 변모한 이들은 '미국 토착주의당'이라는 정식 당명보다 무지당으로 불렸다. 가톨릭 교회 공격과 폭동 등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을 때마다 소속 정당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만 하면 '아무 것도 모른다(know-nothing)'고 시치미를 뗐기에 따라붙은 별칭이다. 무지당의 세력은 급속하게 불어났다. 1855년 6월5일 최초의 전국 전당대회가 열렸을 즈음 하원의석만 43석. 185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직 대통령인 밀러드 필모어를 영입해 3위에 그쳤지만 26%의 표를 얻었다. 이 순간이 무지당의 절정. 얼마 안 지나 의석도 12석으로 줄었다. 무지당의 몰락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노예제도 논쟁이 확산되며 유권자들이 북부의 공화당과 남부의 민주당으로 쏠린데다 산업자본가와 농장주들이 공장과 농장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천인 이민 확대를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지당은 19세기 후반 완전히 소멸됐으나 '중국인 배척법(1882년)'을 비롯한 숱한 이민제한법을 낳았다. 사라진 무지당은 이 땅에서 소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남북한이 통일될 때 투표 성향과 일자리 배분 문제가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