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들의 모임인 한국상장사협의회가 기업들의 과거의 분식회계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상장사협의회의 서진석 상근부회장은 15일 협회 월보인 `상장 5월호' 시사칼럼을 통해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는 관치금융환경에서 산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한성장전략의 부산물이며 기업의 책임으로만 보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면제해주는 과감한 면책처분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서 부회장은 올해 증권집단소송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해 분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으나 민.형사상 처벌 때문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과거 분식을 고백하고 해소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증권집단소송법은 기업의 분식회계로 피해를 본 당사자가 피해보상 소송에서 승리하면 같은 피해를 입은 다른 피해자들도 소송없이 같은 보상을 받도록 한 제도로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며,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2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현재 분식회계와 관련된 민사 책임은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상법상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 증권거래법상 유가증권신고서 부실기재 책임 등이 있으며 형사법적으로는 사기죄, 횡령죄, 배임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의 적용이 가능하다.
서 부회장은 분식회계에 대한 민.형사적 책임이 이같이 무거운 상황에서 기업이자발적으로 분식회계를 시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분식은 민.형사법상 책임이 소멸시효를 경과하지 않는 한 여전히 부담"이라면서 "과거분식을 시정하려면 또 다른 민.형사 소송에 휘말릴 우려 때문에강행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대기업이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해서 고백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우리 기업이 과거 분식의 족쇄에서 벗어나 투명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개별 기업의 분식해소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작년의 경우 상장기업들 중 18.6%가 분식회계를 했으며 비상장기업들은 거의 100%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최근 분식회계를 자신 신고한 기업은 기아차와 대한항공 등 소수에 불과했다.
서 부회장은 "최근 석가탄신일 특사의 일환으로 분식회계 관련 경제인들을 대거사면조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서 "왜곡된 회계를 말끔하게 시정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과거 분식에 대해 증권집단소송법 적용을 2년 유예한데 이어 민.형사 책임까지 면제해달라는 것은 개혁의 후퇴이며 법적으로도 수용 불가능한일이라는 단호한 입장이다.
금융감독위원회 윤용로 감독정책2국장은 "기업들의 분식회계로 인해 개인들이입은 피해를 국가로 하여금 면책해주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박고 "분식회계는 과거 사회적 환경탓도 있지만 해서는 안되는 짓이었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집단소송법 적용을 2년 유예한 조치를 놓고도 참여연대와 개혁성향의 국회의원 등 일각에서 개혁의 후퇴라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어 민.형사적책임까지 면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대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