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 죽음 뒤엔 경찰 늑장출동 있었다"

112에 차주인 폭행 신고했지만 2시간30분 만에 도착
유족 "현장서 20분 거리인데 왜 바로 못왔나"
경찰 "신고·사고장소 달라… 갔었지만 못 봐"

술에 취한 차량주인이 승용차로 들이받는 바람에 숨진 대리기사 이동국(52ㆍ한국일보 19일자 11면)씨가 사건 발생 전 다툼 과정에서 112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발견하지 못해 그냥 돌아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제때 발견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경찰과 목격자, 유가족 등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진 지난달 26일 밤 9시29분께 대리기사 이씨는 112에 전화해 "술에 취한 사람이 내 뺨을 때리는 등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익명의 목격자의 진술로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남양주경찰서 소속 별내파출소로 출동 지령이 떨어졌지만 경찰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차주 박모(41ㆍ설비기사)씨는 갓길에 세운 차량 뒤쪽에서 이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갑자기 운전석으로 들어가 차를 후진시켜 이씨를 들이받고 다시 전진해 쓰러진 이씨를 바퀴로 재차 밟고 지나 그대로 달아났다. 경찰의 사망 추정시간은 이씨의 112신고 후 30분이 지난 시점인 26일 오후 10시~11시 전후다. 이씨의 여동생(45)은 "경찰이 신고를 받고 바로 오기만 했어도 참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별내파출소 관계자는 "최초 신고접수 장소는 별내IC에서 30㎞정도 떨어진 구리톨게이트 부근이었다"며 "곧바로 출동했지만 차가 이동 중이었는지 발견을 못했고 이후 주변 고속도로를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지만 현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목격자 A씨는 "갓길 정차 금지라고 해서 갓길에 차량만 있어도 순찰차가 그 차량을 빼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고속도로 갓길이 그렇게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경찰이 사건 현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이씨가 이미 숨진 뒤인 오후 11시50분께다. 별내IC를 지나던 트럭 운전기사가 "갓길에 보행자가 있다"며 불암산 톨게이트에 알리자 외곽순환도로를 관리하는 서울고속도로 순찰팀이 현장에 출동해 이씨의 시신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갓길 보행자는 차주 박씨의 일행인 김모(23)씨로 박씨가 이씨를 친 뒤 혼자 달아나자 갓길에서 남아있다 트럭운전기사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더욱이 달아난 박씨는 외곽순환도로를 통해 경기 일산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다 일산 시내에서 다시 뺑소니 사고를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와 관련, "박씨가 사람을 친 것인지 사물을 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사건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경찰에 체포돼 살인 및 뺑소니 음주운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 한편, 이씨의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박찬종(전 국회의원) 변호사가 유가족을 돕겠다고 나섰다. 박 변호사의 보좌관은 "박 변호사가 이씨의 사연을 읽고 많이 안타까워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유족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미네르바 박대성씨 등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을 무료 변론해 왔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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