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멕시코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페소화 폭락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한국도 그같은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는 최근 미국 학계의 지적이 새삼 우리의 관심을 끈다.올해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5개국의 수출이 크게 둔화되고 경상수지적자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멕시코 사태의 재판 위험성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경고다.
이는 멕시코 위기 때의 경제지표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5개국 경제현황을 비교 분석, 금융 위기의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서울경제신문 17일자 1면 보도>
멕시코 사태는 당시 대통령 후보의 암살 등으로 정치불안이 고조되어 있는데다 GNP의 8%가 넘는 경상수지적자, 페소화의 고평가가 원인이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외환부족, 페소화의 방어력 상실과 채무이행 능력 불안에 따른 외국자본의 대탈출이 도화선이 됐다. 외국의 단기자본(핫머니)이 대탈출하는데도 이를 막을 외환도 부족했고 신용도가 떨어져 새로 빌려올 수도 없었다. 결국 페소화가 폭락, 부도 직전으로 몰렸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응급구제로 부도는 모면했지만 마이너스 성장에 인플레가 두자릿수로 다시 치솟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그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는 당시 멕시코와는 다르다. 산업구조와 체질이 다르고 관료나 국민의식도 그들과 같지 않다. 그러나 여러 지표가 그때의 멕시코 경제와 닮아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경기가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물가는 불안하고 수출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경상수지적자가 이미 1백억달러를 훨씬 넘어서 연말에 가서는 2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까지도 좋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적자 비율이 아직은 3%대에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수준이라는 5%선 방어도 보장할 수 없다.
소비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추세에 있는 저축률도 멕시코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화는 고평가되고 있다.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9% 고평가(빅맥 지수)되어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당시 멕시코 페소화는 달러에 비해 5%정도 고평가되어 있었다. 최근 환율이 오르기는 했지만 수출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 사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직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OECD 가입으로 멕시코 경제가 자생력 경쟁력을 미처 갖추기도 전에 외국의 핫머니 물꼬를 활짝 열었다. 금융 외환시장을 과속 개방한 후 위기가 닥쳤는데도 정부가 통제수단을 잃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시장개방은 점진적으로 해야 하며 또 시험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우리도 OECD 가입이 확정됐다. 미국 학계의 지적을 공연한 흠집내기로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경고로 받아들여 대응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