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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40돌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도전과 신화창조의 역사였다.
본격적인 사업은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시작했다. 지난 1983년 이른바 '도쿄 선언'을 통해 오늘날의 삼성이 있게 한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삼성은 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의 자연조건에 적합하면서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이 제2의 도약을 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당시에는 허약한 자본과 기술 등을 들며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도쿄 선언 10개월 만에 세계 세번째로 64K D램을 내놓고 세계 반도체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첫 고비는 1986년. 1M D램 양산을 위해 3라인 투자를 결정할 시점이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기흥에 갈 때마다 "저 자리(3라인)에 라인이 서면 전체적인 조화가 잘 맞을 것"이라며 투자를 재촉했다. 하지만 당시 3억4,000만달러로 추정되는 막대한 건설비용과 1•2라인 건설로 이미 적자였던 회사 재정을 감안한 임원들은 결사반대했다. 회장(창업주)의 판단이 흐려졌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결국 "건설하고 있다"는 주변의 뻔한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창업주는 1987년 "착공식에 참석하겠다. 8월7일에 착공하라"고 엄명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는 3라인이었고 3개월 후 그는 영면했다. 3라인은 훗날 반도체 신화의 요체이자 최고의 승부수로 꼽히며 창업회장의 마지막 유산으로 불리는 기념비다.
씨앗은 창업주가 뿌렸지만 중추적 토대는 이건희 전 회장이 다졌다. 그는 1974년 사재까지 동원해 한국반도체 인수부터 깊숙이 개입하면서 이미 이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직후 도시바•NEC•샤프 등의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꼼꼼히 메모했으며 이 전 회장은 이 노트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장 시절 메모리반도체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다. 1992년 64M D램을 최초로 개발, 마침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1993년에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로 올라섰으며 1994년, 1996년 256M과 1G D램을 연속 최초 개발, 반도체를 한국의 대표산업으로 키웠다. 2002년에는 낸드플래시 세계 1위에 올랐으며 2006년 세계 최초 50나노 D램과 2007년 30나노 낸드 등을 최초로 내놓으면서 삼성전자는 메모리업계 점유율 30%가 넘는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은 "반도체 진출 당시 감독은 이병철 창업주의 몫이었지만 이 결단을 이끌어내고 토대를 다진 것은 이건희 전 회장"이라며 "반도체 사업은 이병철 창업주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이건희 전 회장의 첫 작품"이라고 했다. 반도체 사업에서의 변화와 도전은 '신화'가 아닌 삼성전자를 관통하는 정신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