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가 빚을 못 갚고 숨졌을 때 `상속개시를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을 포기해야 채무 변제의무가 없어진다"는 민법 규정을부모가 아닌 손자ㆍ손녀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조부모가 진 빚에 대한 상속을 부모가 포기했더라도 차순위 상속권자인 손자ㆍ손녀가 법률을 잘 몰라 상속포기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대신 갚아야 한다는 기존 하급심 판결을 깬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상속포기 신고를 한 부모와 달리 신고를 하지 않은 차순위 상속권자인 손자ㆍ손녀가 조부의 빚을 대신 갚을 의무가 있다"며 숨진 노씨의 손자ㆍ손녀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녀의 상속포기 때 손자ㆍ손녀가 차순위 상속인이 된다는 법리는 민법 규정의 종합적 해석을 통해 도출된 것이지 명시적 규정이 없는 만큼일반인 입장에서 손자ㆍ손녀가 차순위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오히려 이례적이다. 법원은 상속개시 원인 사실 뿐만 아니라 손자ㆍ손녀가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알게 된 날도 심리ㆍ규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손자ㆍ손녀를 상대로 한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소송제기 사실을 안 노씨의 자녀가 부랴부랴 이들에 대한 상속포기 신고를 했다는 사실은 조부모의 채무가고스란히 손자ㆍ손녀에게 상속될 것임을 몰랐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노씨의 자녀는 1997년 1월 8천700여만원의 빚을 진 부친이 숨지자 한달 반 만에상속포기 신고를 했지만 기술신용보증기금이 2002년 5월 차순위 상속권자인 노씨의손자ㆍ손녀들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내자 같은 해 11월 뒤늦게 손자ㆍ손녀들에 대한 상속도 포기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손자ㆍ손녀들도 법정 대리인인 부모를 통해 빚이 상속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 "뒤늦은 상속포기 신고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 차순위 상속권자인 손자ㆍ손녀가 조부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