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베를린 인구포럼에 다녀와서

젊은층의 복지제도에 대한 불안감 빈부격차 따른 계층간 갈등 심화 등 유럽 경제 고령화 문제 '발등의 불'
국가 역할 축소·민간 부담 확대 등 유럽 각국 다양한 제도 변화 시도 우리도 고유의 발전모델 모색해야


지난 4월10~11일 이틀간 베를린 인구포럼에 초청받아 독일을 방문했다. 이번 포럼은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고령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고 18개국에서 참여하는 국제적인 포럼이었다. 안전과 신뢰, 연대가 주제였다. 그만큼 유럽이 전통적으로 지향해왔던 이러한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가치들을 어떻게 복원시키고 유지할 것인가는 강대국 독일마저도 고민하고 있다.

유럽의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령화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자신이 노인 세대가 됐을 때에 현세대 노인이 누리는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세대 간 연대가 흔들리고 있다.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계층 간의 갈등은 심해지고 있고 주변 국가들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로 인한 재정 부담과 사회 문제들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경제가 튼튼한 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고 노후를 위해 맡긴 돈이 제대로 관리될지 금융 시스템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유럽식 복지국가모델이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데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고 실업과 마약 등 사회적 난제에 대한 국가의 대처 능력은 한계를 보인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 등이 복지를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 방안으로 보육료 지원과 보육 인프라에 의해 유지돼왔던 국가 보육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시간 보육' 시스템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심화되는 노인 부양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줌으로써 연금과 의료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역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교회 내 건강한 노인이 장애 노인을 수발함으로써 건강한 노인은 일자리를 얻고 장애 노인은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하는 프로젝트가 독일의 작센주에서 이미 시작됐다.

유럽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다닥다닥 붙은 이웃끼리 서로 싸우고 배우면서 커왔다. 이를 통해 유럽 특유의 다양성의 사회와 창의적인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독일은 최근 프랑스와 인구 경쟁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출산율이 1.4에 불과한 독일은 2.0에 가까운 프랑스와 인구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국력이 뒤처지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일본은 일찍이 유럽의 복지국가모델에 눈을 떴으나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일본식 복지제도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한때 가까운 선진국 일본을 문턱이 닳도록 방문하면서 열심히 배웠다. 우리가 살만해지고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자 일본이 시시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유럽을 복지국가의 전범(典範)으로 생각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스웨덴을 비롯해 독일·프랑스·영국을 해마다 방문한다. 이들 나라는 이젠 한국인들의 방문이 귀찮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탓이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단련돼왔다. 경쟁력은 갖췄으되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다.

변화하는 유럽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늘 따라가는 입장에서 한국식의 고유한 발전모델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느낀다. 아시아의 이웃인 일본·중국 등과 경쟁하고 교류하며 세계를 향해 소통해야 한다. 파격적인 인구 대책과 더불어 한국식의 창의적인 사회 보장 시스템이 필요하다.

굳건한 사회 안보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국민적인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 절실한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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