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괴담에 시달리는 기업인


요즘 대기업 경영인들은 갖가지 괴담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우선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모 회장이 이런 일로, 아무개 회장이 저런 일로 국감장에 불려가게 될 것이라는 풍문이 무성하다. 기업인들이 '국감괴담'에 떠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증인으로 채택되면 문제 있는 기업으로 오해를 받기 십상인데다 국감 현장에선 국회의원들로부터 죄인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는 경제민주화 열풍으로 기업인들에 대한 압박 수위가 예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해 국감을 앞둔 기업인들은 흡사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이미 증인으로 채택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이 증인ㆍ참고인 신청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일감 몰아주기와 '갑(甲)의 횡포'논란과 관련해 신종균 삼성전자 대표,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영인들이 증인으로 소환된다.

기업을 괴롭히는 또 다른 괴담은 '유동성 위기설'이다. 올해 상반기 STX그룹에 이어 최근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와 해체 위기에 빠지자 대표적 불황업종인 건설ㆍ해운 계열사를 둔 A그룹ㆍB그룹ㆍC그룹 등이 연쇄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괴담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해당 그룹들이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며 서둘러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근거 없는 풍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혹한 총수처벌이 경영불안 키워

무엇보다 기업인이 가장 견디기 힘든 괴담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풍문일 것이다. '아무개 회장이 검찰에 불려갈 것이다, 모 그룹이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라는 식의 발 없는 말이 빠르게도 퍼져간다.

아무 근거가 없는 소문일 뿐이니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요즘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당국의 행보와 맞물리면서 괴담은 설득력을 키우고 있다. 예컨대 전직 대통령과 같은 대학을 나온 D그룹 총수, 전직 대통령과 사돈관계인 E그룹 총수, 전 정부 때 파격적 혜택을 받은 F그룹 등이 공교롭게 총수가 구속되거나 특별세무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면서 그 다음에 당할 대상이 누구인지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게 다치는 기업이 어김없이 생기는 모습을 봐왔던 재계에서는 D그룹과 E그룹ㆍF그룹이 새 정부에서 가장 먼저 칼날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찍이 있었던 터라 실제로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며 '데자뷔(기시감)'에 놀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여기에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ㆍ최재원 회장 형제에게 핵심증인의 증언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전례 없이 가혹한 판결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 기업인들의 공포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두려움은 불안을 키우고 괴담은 그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정권 교체 때마다 재계에 대한 복수가 반복됐던 기시감에 현 정부의 거침없는 칼부림을 목도하면서 전 정부와 인연이 각별했거나 협력이 남달랐던 G그룹 총수, H그룹 총수, I그룹 총수가 다음 제물이 될 것이라는 괴담이 불쑥불쑥 대책 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기업 손보기로 투자ㆍ일자리 위축

하지만 필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결코 보복성 기업 손보기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박근혜 정부가 기업의 기를 꺾고 혁신에너지를 말살시키는 보복행위를 할 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과거의 악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근절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보복은 당장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정부와 기업 간 안정적인 협력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치유해야 할 정치적 병리현상이다. 특정 기업이 지난 정부를 도왔다는 이유로 다음 정권에서 치도곤을 당한다면 도대체 어느 기업이 지금 정부에 협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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