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리아 공습을 기정사실화했다가 정치ㆍ외교적 궁지에 몰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 승인'이라는 도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군사작전을 명령할 권한이 있지만 이에 대한 민주적인 토론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력사용에 대해 민의를 대표하는 의회의 승인을 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의회 지도부에 5주간의 여름 휴회를 끝내고 오는 9일 문을 여는 대로 이 문제를 토론한 뒤 투표를 거쳐 결정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미군의 군사공격은 일러야 9월 중순께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이날 "토론 등의 절차를 감안하면 의회 동의는 개회 이후 적어도 10일은 더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시리아 화학무기 참사와 관련한 유엔 조사단의 현장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앞으로 수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군사공격이 다음달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27일만 해도 서방국와 공조해 이르면 29일께 시리아를 공습하려던 오바마 대통령이 갑자기 의회 동의로 돌아선 것은 시리아 공격이 정치ㆍ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우선 프랑스ㆍ일본ㆍ터키 등이 시리아 공격을 지지하지만 정작 최대 우방국인 영국 의회가 거부하면서 국제공조에 균열이 생겼다. 또 중국ㆍ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는 이미 물 건너간 상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역시 군사제재에 반대하는 실정이다. 미 국민들 사이에서도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이처럼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공을 의회로 넘겨 시리아 공격의 명분을 쌓겠다는 것이다.
애런 데이비드 밀러 전 백악관 중동지역 고문은 "이번 제의는 오바마 대통령이 고립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며 "제한된 전쟁이라도 정치적으로 위험한 만큼 의회 등과 책임을 공유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5~6일 러시아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도 부담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러시아 망명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까지 취소된 마당에 시리아 공격을 감행하면 양국 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 뻔하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시간을 벌 필요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공화당과의 관계개선이라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시리아 공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2014회계연도 예산안 처리나 국가부채한도 상향 조정, 증세 및 이민법 개혁 등 공화당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사안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군사공격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룰 경우 연방정부 폐쇄나 부채한도 등의 이슈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승부수가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 중 가장 위험한 도박이 될 것(뉴욕타임스ㆍ블룸버그)'이라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의회 동의가 무산될 경우 곧바로 레임덕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제전략센터의 존 앨터먼 중동 부문 이사는 "투표에서 부결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암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리아 공격을 의회가 동의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톰 콜(오클라호마ㆍ공화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 다수를 끌어들이면 투표에서 이기겠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반면 시리아 문제에 대해 명확한 구심점이 없는 민주당 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결국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민주당은 시리아 공습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은 반면 공화당은 지상군 투입 등 더 강도 높은 군사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의회 동의가 무산될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다음 행보도 관심거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성명에서 "시리아 공격시점은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다음주가 될 수도, 다음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 의회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공격을 감행할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의회가 동의를 거부하면 시리아 공격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가 반대하는데도 전쟁을 일으킨 첫번째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 조시 HW 부시 대통령과 조시 W 부시 대통령의 경우 의회의 동의를 얻어 이라크 전쟁을 치렀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아예 의회 동의 절차 없이 리비아ㆍ아프카니스탄ㆍ코소보에 군사작전을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