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국가 신용도(사설)

기아사태의 파장이 드디어 국가신용도 추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달에 이르는 동안 기아사태가 혼미를 거듭하는 사이 국내은행의 신용도가 떨어져 해외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시중은행에 이어 국책은행까지 해외 채권발행이 어려워지고 차입금리도 오르고 있다. 이유는 신용도 추락 때문이다. 국책은행의 신용도 추락은 곧 국가신용도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금융공황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우려했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는 징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이 어려워진 원인은 국제적 신용평가가 낮아진데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한국 신용등급의 하향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스탠더드&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아직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아니라 해도 해외차입은 그만큼 불리해졌다. ○해외 자금조달 큰 차질 시중은행의 해외차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며 국책은행이 해외 시장에서 기업어음(CP)을 발행해도 소화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신용전망이 「부정적」으로 낮아진 이후의 일이다. 실제로 평가등급이 낮아질 경우 장기채 발행이 불가능해지고 발행이 된다 해도 고금리의 정크본드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자금조달 사정이 악화되고 이같은 사태가 장기화되면 금융공황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게 마련이다. 멕시코 사태와 최근의 동남아 통화위기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고 우리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정부는 자율을 명분으로 방관해 왔다. 사태가 절박해지자 뒤늦게 지원을 검토한다고 하나 엎질러진 물을 담는 격이어서 수습이 쉽지 않다. 물론 구조조정과 시장경제 원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개별기업과 은행의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도 자율 논리와 맞을지 모른다. ○금융공황위기 눈앞에 그러나 원칙론만으로는 통하지 않는게 현실이다. 구조조정이 기업부실→은행부실→기업부실로 이어지는 부실 악순환을 초래하고 경제가 밑바닥까지 흔들리는 위기상황으로 번지는 과정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율이 그 위기의 방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정책운영은 장기적인 구조조정과, 시장경제 발전과, 단기적인 현안 조정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시기선택도 중요하다. 경제가 위기에 이르도록 방치했다가 회복시키려면 많은 비용과 노력이 소요된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 있다. 정부가 불개입을 주장해 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실제로는 정부가 구석구석에 간여해왔기 때문이다. ○뒤늦게 대착마련 부산 기아 사태만 해도 그렇다. 기아그룹이 부도유예 협약의 적용을 받게 된지도 한달이 됐다. 부도유예협약이 정부 작품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부와 채권금융기관과 기아가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사이 협력업체들이 부도위기에 몰렸다. 금융기관이 대출을 기피하고 정부도 뒷짐을 지고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부도위기가 확산, 경제가 더욱 어렵게 꼬여가고 있다. 여기에 신용도까지 추락하여 자금줄이 조여진 것이다. 신용위기가 금융공황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다급해졌다. 기아사태에 따라 소비,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수출에 차질을 빚어 하반기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민간연구기관들은 또 하나 대기업이 부도가 나거나 기아문제의 해결이 늦어져 장기화할 경우 복합불황과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하고 지원해야 할 일에 사태가 극도로 악화된 후 나섬으로써 국가 신용추락이라는 큰 부담을 안게됐다. 적기를 놓친 정책은 효과가 반감되게 마련이다. 신용도 추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의 의미를 희석시켰다. OECD에 가입하면 국제신인도가 높아져 경제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빛을 잃은 것이다. 위기의 경제 살리기가 국가적 과제인 때다. 경제를 살리는 노력에 정부가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 국가 신용회복이 급한 불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