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6월18일] 바나나 쿠데타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954년 6월18일 아침8시. 480명의 과테말라 쿠데타군이 온두라스 접경을 넘어 5개 공격지점으로 쳐들어갔다. 쿠데타군은 정부군 5,000여명을 물리치고 9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절대적인 병력열세를 극복한 비결은 미국의 개입. 미국은 왜 과테말라 민주정권을 무너뜨렸을까. 민족주의 확산 방지와 바나나 회사의 이익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발단은 알벤스 대통령이 시도한 자주경제5개년계획. 미국적 유나이티드프루츠(UF)사가 과테말라 바나나 생산의 93%와 철도ㆍ항만ㆍ발전소ㆍ상하수도를 독점한 상태에서 집권한 알벤스 정권은 먼저 토지분배를 서둘렀다. 국유지 70만에이커와 UF사 소유의 유휴지 50만에이커를 사들여 6만여 농민들에게 분배하려던 계획에 UF사는 앙심을 품고 미국 정계를 움직였다. 결국 선거로 뽑힌 과테말라 민주정권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좌익’으로 낙인 찍혔다. 미국의 첫 제재는 경제봉쇄. 수출입의 85%가 막혀도 버텨나가자 미국은 쿠데타군을 움직였다. 해상에는 항공모함 전단과 해병전투단을 대기시켰다. 쿠데타군이 밀릴 때마다 미국인이 조종하는 폭격기가 정부군을 때렸다. CIA의 최대 무기는 방송. ‘자유의 소리’라는 라디오방송국을 만들어 쿠데타군의 성과를 과장 보도해 민심을 이반시키고 정부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쿠데타로 과테말라의 경제개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들어선 것이 철권통치. 빈부격차 심화와 억압이 야기한 내전은 1996년 종식될 때까지 20만명의 목숨을 삼켰다. 쿠데타 이전의 민주정권 기간을 ‘10년간의 봄’으로 기억하는 과테말라인들은 최근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경제주권 회복만큼은 요원하다. 친미군정 기간 중 UF사 등 다국적기업의 경제지배 구조가 고착된 탓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