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볼모 흥선대원군, 명성황후에게 후사 부탁 편지 보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종덕 연구원 주장
수신인 ‘뎐 마누라 젼’의 ‘뎐’은 중전 지칭 殿


구한말 비운의 정치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정치적 앙숙으로 알려진 며느리 명성왕후(1851~1895)에게 후사를 부탁하는 친필 편지를 보냈다는 주장이 제기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동안 망극한 일을 어찌 만 리 밖 책상 앞에서 쓰는 간단한 글월로 말하겠습니까. (중략) 다시 뵙지도 못하고 (내가 살아 있을) 세상이 오래지 아니하겠으니, 지필을 대하여 한심합니다. 내내 태평이 지내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편지가 쓰여진 1882년 당시 흥선대원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중국 톈진(天津)에서 유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편지 봉투에는 '뎐 마누라 젼(前)'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봉투에 적힌 '마누라'를 '아내'로 해석해 흥선대원군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로 추측했다.

하지만 이종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이 편지가 흥선대원군이 부인이 아닌 며느리인 명성황후에게 보낸 편지라고 주장하며 연구결과를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가 주최한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공개했다. 또 이어 27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장서각에서 열린 '제2차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추가로 발표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뎐 마누라 젼'의 '뎐'은 대궐 전(殿)자이며, '마누라'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된 말이었다. 같은 사례로 순조 임금의 딸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의 글에도 '뎐 마누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중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편지 내용이 있었지만 '마누라'를 부인이 아닌 며느리인 명성황후로 보면 편지 내용이 맞아떨어진다는 게 이 연구원의 주장이다. 따라서 위 편지 글에서의 ‘망극한 일’은 임오군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편지 내용 중 '마마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환위(還位)를 하셨거니와 나야 어찌 생환하기를 바라오리까'에서 '환위' 역시 임오군란 때 지방으로 피신했던 명성황후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편지에서 흥선대원군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명성황후에게 후사를 부탁했다.

"나는 다시 생환은 못 하고 만 리 밖 고혼이 되오니, 우리 집 후사야 양전(고종과 명성황후)께서 어련히 보아 주시겠습니까."

이 연구원은 “(필요에 의한 편지일 뿐) 정서적 친밀함이 담긴 편지는 아니다”며 “(아들인) 고종의 안부보다 실권자인 명성황후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는 점은 당시 흥선대원군의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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