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사실상 11년째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겨 ‘지각 국회’라는 오명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정치권이 극단적인 대치를 이어지면서 10일 폐회하는 이번 정기국회는 입법 실적이 전무한 최악의 ‘0점 국회’로 남을 가능성도 커졌다.
국회는 1일 헌법에서 정한 새해 예산안 처리시한(12월 2일)을 하루 앞뒀지만 예산안을 제대로 상정할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 정기국회가 열린 지 3개월이 지났지만 법안을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격렬한 정치 공방을 이어갈 때도 정기국회 3개월간 법안이 총 119건 통과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국회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놓여 있지만 여야는 여전히 ‘네 탓 공방’에만 골몰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이틀째 예산안에 대한 장외 자체 심의작업을 진행했다. 예산안 처리 지연의 책임이 새누리당의 ‘날치기’에 있다는 주장을 부각 시키는 동시에 민주당 탓에 심의 일정이 늦어진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민주당은 준예산의 ‘ㅈ’자도 검토해 본 적이 없고 검토할 생각조차 없다”며 “나라의 살림, 민생의 핵심인 예산안은 의회주의 정신에 따라 여야 합의 처리돼야 하고 우리는 그럴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지난달 29일부터 가동 예정이었던 예결위에서 아직 예산안을 상정조차 하지 못한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 민주당이 여야가 이미 합의한 일정을 무시하고 예결위에 무단으로 불참해 심의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2일 단독으로라도 예결위에 예산안을 상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미 강창희 국회의장이 상임위원회별 예산심사 기일을 지난달 29일로 지정했던 만큼 법적으로 예결위원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충분히 갖춰졌다는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이 예결위에 상정도 안 되는 상태에서 법정 시한 경과를 맞이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더이상 (상정을) 끄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깊어지는 갈등의 골은 이번 주에도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선 새누리당 소속 이군현 예결위원장이 예상대로 예산안 상정을 강행할 경우 민주당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이번 주 이뤄질 것으로 알려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임명장 수여도 또 다른 암초다. 민주당은 문 후보자가 2009년 법인카드를 사용한 강남구의 한 업소가 접대부를 고용해 불법영업을 하다가 2차례 적발됐던 곳인 게 확인됐다며 그를 기필코 낙마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여야 관계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워지면서 예산안 의결은 예결위 간사간 합의했던 시일(16일)은 물론 연말을 넘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예산안이 통과 못 했을 때 비상으로 편성하는 준예산 준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준예산은 최근 미국 연방정부를 마비시켰던 셧다운(shutdown)과 유사하다.
최 원내대표는 “준예산 편성 역시 예산 편성 지침을 보내고 각 부처의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등 최소 1~2주의 기간이 걸린다”며 “아직 기획재정부에서 본격적인 준비단계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국회 상황을 보며 염려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