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전 서울 태평로에서 시민들이 만든 상여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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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가 열리는 시청광장에 영정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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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있는 가운데 29일 시청광장 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고영권youngkoh@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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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가 열리는 시청광장에 마련된 대형화면에 권양숙여사가 보이고 있다.2009.5.29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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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40만 눈물 이별
노제-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 '사랑으로' 합창으로 마무리화장-유족등 1,000명 엄숙하게 거행… 2시간만에 한줌 재로안치-봉화산 정토원에 임시 안치… 49재후 사저인근에 안장
수원=윤종열기자 yjyun@sed.co.kr
성행경기자 saint@sed.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 수원시연화장에서 엄수된 후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가 유골함을 안고 연화장을 나서고 있다. /수원=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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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상복을 입은 공연단이 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를 추고 있다. /고영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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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를 승화원으로 운구하고 있다. /수원=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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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전 서울 태평로에서 시민들이 만든 상여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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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가 열리는 시청광장에 영정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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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있는 가운데 29일 시청광장 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고영권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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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노제가 열리는 시청광장에 마련된 대형화면에 권양숙여사가 보이고 있다.2009.5.29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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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路祭)는 광화문을 가득 메운 추모인파 때문에 예상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서울광장에는 노제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정오가 되기 전에 수십만명이나 운집했다. 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애도를 표했다.
◇노제=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나온 노 전 대통령의 영구차가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오후1시20분께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노제가 진행됐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에 이어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 고인의 넋을 달래기 위한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안도현ㆍ김진경 시인이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안도현 시인은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라는 제목의 추도시에서 '고마워요, 노무현. 우리가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당신은 으깨진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라며 노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조시 낭독에 이어 안숙선 명창이 추도창을 했으며 고인에 대한 묵념과 장시아 시인의 유언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2시께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고인의 영구차는 시민들이 '아침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는 가운데 수원 화장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인파를 뚫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2,000여개의 만장이 뒤따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린데다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운 추모객들이 운구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터주지 않아 예상보다 시간이 크게 지연됐다. 서울광장에 모였던 대부분의 추모객들은 서울역까지 영구차를 뒤따르며 '노무현'을 연호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소리치며 노 전 대통령과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화장=노제를 마친 노 전 대통령 유해는 당초 예정시간인 오후3시를 훌쩍 넘긴 오후6시께 노랗게 물든 진입로를 지나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연화장은 노란 물결로 넘쳐 났다. 시민들은 연화장 진입로 3.2㎞ 구간 가로수에 노란 풍선과 리본을 매달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애도를 표시했다. 또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노짱 사랑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 현수막을 내걸어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추모객들의 오열 속에 화장장 앞에서 차량에서 내려진 뒤 운구병에 의해 입구까지 운구된 뒤 8번 분향소로 옮겨졌다. 유족들도 승화원(화장장) 입구에 마련된 제단에서 분향하고 8번 분향실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추모객들이 "힘내세요"라고 외치자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은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13.2㎡(4평) 남짓한 8번 분향실에서 유족들은 창문 너머로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고별의식을 하며 오열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8번 화장로로 들어가 1시간여 만에 한줌 재가 돼 나왔다. 화장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유골함에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불교ㆍ기독교ㆍ천주교 등 종교인들이 참석, 종교의식을 가졌다. 경기 화성에 소재한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용주사에서 스님 100여명이 노 전 대통령의 극락영생을 기원했다.
낮 최고기온이 30도가 넘는 등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 속에서도 시민들은 조용히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수만여명의 시민들은 목에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7일째 추모와 애도의 열기를 이어갔다. 간간히 노 전 대통령의 영상과 육성이 흘러나오자 눈물을 보이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수원 파장동에서 왔다는 김모(39)씨는 "정말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는데 앞으로 그분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앞으로 그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 영통에 거주하고 있는 이복희(67)씨는 "노 전 대통령이 너무 불쌍하다"며 "우리 모두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안치식=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날 밤 늦게 봉하마을로 돌아와 봉화산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곳으로 생전에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 역할을 했던 선진규(75)씨가 원장으로 있다.
안치식은 정토원 앞뜰에서 반혼제(返婚祭)로 시작됐다. 반혼제는 죽은 사람의 혼을 집으로 불러들일 때 지내는 제사다. 반혼제를 거행한 뒤 유골함은 법당인 수광전으로 옮겨져 개문제(開門祭)를 지내고 유족이 부처에게 예를 올렸다.
이어 고인의 유골함은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단(靈壇)'에 안치됐으며 유족과 장의위원 등이 49재의 첫번째 제사인 초제의식을 치렀다. 정토원에 임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곳에서 오는 7월10일 49재를 지낸 후 봉하마을 사저 인근 묘소에 안장된다.
아직 장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봉분을 만들지 않고 고인의 유언에 따라 '아주 작은 비석'만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비석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건립위원장을 맡아 제작하며 비문의 최종 완성은 황지우 시인이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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