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0억불 지원 턱없이 부족/일부종금 외화 부도위기까지/해외자산 처분 등 자구 더불어 특단대책 시급외화자금 시장에 「3불문」이 나돌고 있다.
기아사태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인도가 추락, 해외로부터의 외화차입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은행과 종금사들이 심각한 외화자금난으로 금리, 금액, 기간 등을 불문하고 외화를 구하러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화 유동성위기는 금주들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11일과 12일 일부 은행과 종금사들은 저녁 늦게까지 외화를 구하지 못해 거의 부도위기까지 몰렸다가 국내 은행 해외지점들에 수소문해 겨우 자금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자금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지난 8일 한은의 외국환평형기금 외화콜자금 입찰과정에서 두드러졌다. 1주일만기에 14억3천만달러 규모로 실시된 이날 입찰결과 낙찰금리는 리보에 1.25%포인트를 더한 수준. 통상 리보에 0.5%포인트가량 가산금리가 붙었던 종전 낙찰금리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한은이 공식적으로 국내 금융기관에 지원하는 외화자금의 금리수준이 이처럼 높아짐에 따라 외국은행 국내지점이나 해외금융기관들도 국내 금융기관에 공급하는 외화자금의 금리를 덩달아 높이고 있다.
이같은 외화자금난은 그동안 국내 금융기관에 외화를 공급해왔던 일부 국책은행들이 외화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외화공급규모를 줄임에 따라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S&P사와 무디스사가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외화조달금리가 상승, 외화조달규모를 줄였고 중소기업은행도 만기도래한 외화CP의 차환발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기존의 국내금융기관에 대한 외화여신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는게 외환전문가들의 시각. 오는 9, 10, 11월중 종금사들이 지난해 1년물로 조달한 외화자금의 만기가 대거 도래함에 따라 올 연말까지 외화자금난은 극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10억달러의 보유외화를 금융권에 긴급지원키로 했지만 이는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번 터지면 돌이킬 수 없는 외화자금 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이 외화자산을 대거 처분하는 등 자구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하루빨리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국의 외환위기 사례
외환위기란 단기간에 환율급등으로 자국통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외화가 대량 유출됨으로써 대외지급능력이 악화돼 금리상승, 주가폭락 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최근 우려되는 외화자금 대란은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리는 적신호와 다름없다.
대개 경상수지 적자 확대, 자국 통화가치의 인위적인 고평가 등이 근본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요즘은 헤지펀드로 불리는 국제투자가들의 투기적 공격이 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많은 국가들이 경기 침체금융기관 부실여신 증가대외신인도 하락외화자금 조달난등의 수순을 밟아 외환위기에 이르게 된다. 80년부터 지난 95년까지 전세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는 46차례.
대표적인 외환위기사례로 지목되는 멕시코는 80년대후반이래 신흥유망시장으로 급부상했고 90년대 초반 4년동안 9백10억달러의 외화자본이 순유입되는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경상수지적자 등 경제여건이 취약해진 가운데 페소화가치가 과도하게 고평가되고 정치사회적 불안정까지 가세, 94년말부터 외국자본유출사태가 발생했다. 94년 12월부터 95년 3월까지 페소화가치와 주가지수가 각각 53%, 35% 급락했고 금리는 4백44%나 급등했다.
최근 태국은 성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둔화, 부동산관련 대출의 부실화와 그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불안정, 경상수지적자 급증 과정을 거쳐 지난 5월초부터 헤지펀드들의 투기자금 회수를 계기로 외환위기에 빠져들었다.
태국정부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공정할인율 2%포인트 인상 ▲기존 복수통화바스켓제도에서 관리변동환율제로 이행 ▲동아시아 중앙은행들로부터 긴급자금 조달을 실시했다. 또 지난 5일에는 ▲국제금융기구와 외국정부로부터 1백50억달러의 자금차입 추진 ▲정부지출삭감 ▲42개 금융회사에 영업정지명령 등을 골자로 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태국에서 시작돼 동남아국가로 거침없이 번지고 있는 외환위기가 쉽게 가라앉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손동영·김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