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여행을 할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값이 싸게 드는 완행열차를 타는 것보다는 값이 많이 들더라도 급행열차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급행열차가 비용은 더 들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완행열차란 말이 무척 낯설어진 것 같다. 금전적 부담을 감수하고 대신 시간적 이득을 얻으려는 이와 같은 선택의 이면에는 시간이 곧 돈이고 따라서 약간의 금전적 부담은 시간의 절약으로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는 우리들의 경제적 시간관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의식을 하든 안하든 절약한 시간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보고 그것을 다시 금전적 손실과 견주어보는 시간의 경제학에 어느새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돈을 아껴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도 아껴 써야 한다. 시간의 낭비는 곧 금전적 낭비, 또는 나아가 인생의 낭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시간관리가 경제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은행의 고객만족도 조사에 의하면 고객의 최대불만사항이 다름아닌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객들은 불친절보다도 오히려 기다리는 것, 즉 시간의 손실을 더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시간에 쫓기어 살고 따라서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원가절감과 같이 비용의 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치중했으나 요즘은 시간관리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때 유행했던 재테크라는 말을 대체해 시테크라는 신조어가 새로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중소기업은행에서는 기업에 있어서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피드 경영」을 경영방침의 하나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21세기에 대비해 은행으로서 빠른 의사결정과 신속한 서비스를 지향하고 간단명료한 의사소통체계를 갖춘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침하에서 우리은행은 「고객대기시간 보상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창구에 오신 고객이 5분이상 대기하게 되면 현금 1천원을 그 자리에서 보상하는 제도다. 책임자의 정중한 사과가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시범적으로 일부 지점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크다고 판단돼 시범점포를 전국적으로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비록 큰 돈을 보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고객을 기다리게 한 것이 보이지 않게 고객들에게 경제적 손실도 입힌 것이라는 우리 은행의 책임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상을 하는 것은 전혀 아까울 게 없지만 우리 은행으로서는 보상실적이 전혀 없는 날이 빨리 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