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오코너 대법관의 원칙과 소신

이재용 기자 <국제부>

‘샌드라 데이 오코너’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그녀가 요즘 뉴욕타임스ㆍ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녀의 자리를 메울 후임 대법관을 선임하는 문제를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론 미국 내 진보와 보수세력이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친구이자 최측근인 알베르토 곤잘레스 법무장관을 오코너 후임에 지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공화당 표밭인 보수단체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때마침 한국 국회에서도 4일 조대현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에서 여야는 조 후보자가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데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때 노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놓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한국과 미국 모두 국가의 중대사안과 관련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결할 법관을 선임하는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통령의 사람’이 후임 법관에 거론되고 있는 점도 닮았다. 이런 가운데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떠나가는 오코너 대법관의 전력이 새삼 눈길을 끈다. 9명인 미 대법관은 보수와 진보가 5대4로 나뉘며 그중 공화당에 의해 지명된 오코너 대법관은 온건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나 소수자 권리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소신 있게 진보의 편에 서며 보수와 진보간 균형추 역할을 해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03년 소수인종 우대제도 위헌시비에서 대법원의 의견이 4대4로 팽팽히 맞섰을 때 그녀가 부시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헌 쪽의 손을 들어준 사례는 유명하다. 결국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원칙과 소신이다. 개인적 친분이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기에는 그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새로운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을 맞아야 하는 한국과 미국 모두 한번쯤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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